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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랩] 간화선 중흥을 위한 대선사 법회<4일째 원로의원 대원스님>
    불교 2013. 5. 2. 16:23

     
     
    금일 대중께서는 아시겠습니까. 목전에서 여러분과 제가 마주본 이 자리에서 바로 계합(契合)을 해서 바로 알아차리면 여러분이 일생동안 닦아야 할 일이 없습니다. 또 세간이나 출세간 일체 모든 법에 있어서 조금도 의심할 일이 없습니다. 이 자리에서 여러분이 바로 목전에서 해결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을 종노릇 하듯 항상 괴로움을 짊어지고 살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알아차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한 분들을 위해 이 산승이 게송 하나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可笑天然物(가소천연물)
    不假修行得(불가수행득)
    直了此消息(직료차소식)
    祖佛與不他(조불여불타)

    가이 우습다 천연한 물건이여
    닦아 행함을 빌려서 얻어짐은 아니네
    바로 이 소식을 깨달아 알면
    부처님과 조사와 더불어 조금도 다르지 않네

    간단하지만 이 게송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더 이상 법문을 들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 한 가지 더 말씀 드리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설산에서 6년간 고행하면서 수행을 하셨습니다. 안 해 본 것 없이 수행을 하셨습니다. 인생의 괴로움, 즉 생로병사의 문제와 중생들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6년간 말할 수 없는 고행을 하셨습니다. 선지식이 있으면 낱낱이 만나 묻고 해결하고자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의심되는 바를 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보리수 아래에 앉아, ‘나의 문제, 중생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원을 세우셨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사를 걸고 1주일간 앉아 용맹 정진했습니다.

     

    그리고 새벽에 별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모든 것이 본래부터 천연한 물건인데, 이 소식을 내가 몰랐구나. 깨닫고 보니 모든 중생이 조금도 부처님과 다르지 않고 모두 똑같이 천연하구나.’ 하고 말입니다. 여래의 지혜와 덕성을 다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 가지 모든 것을 다 구족하고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깨달음을 성취한 후 부처님은 열반에 들려고 했습니다. 그때 제석천신이 내려와 만류하면서 ‘부처님이 보기엔 모두 차별 없이 다 같지만, 아직도 범부중생은 모릅니다. 그러니 열반에 들지 말고 중생을 제도해서 중생이 부처님과 같다는 것을 깨닫게 해줘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부처님이 입적하고 가시면 중생은 알 수 없다면서 중생을 위해 설법을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일생동안 전하신 가르침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 중생이나 부처님이나 모두 똑같이 갖고 있다는 이 자리를 직시하고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헤아리거나 의심하지 말고 즉각 바로 보고 알아야 합니다. 이처럼 부처님이나 역대조사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간화선 설법이 지금 세상의 중생에게 전해져 휘날리고 있습니다. <대중 박수>

     

    부처님께서는 중생이 이 같은 사실을 왜 모르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중생이 망상에 사로잡히고 집착하기 때문에 모르더라는 것입니다. 게송을 하나 알려드리겠습니다.

    妄心本來空(망심본래공)
    不住有無空(부주유무공)
    大力過量人(대력과량인)
    頭頭皆漏泄(두두개루설)

    망상과 마음이 본래 공하여
    있고 없는 공에 머무르지 않도다
    큰 힘을 가진 사람은 분량의 한계를 지나가니
    두두물물이 다 이 소식을 누설함이로다

     

       
     
    가만히 자신을 돌이켜 봐야 합니다. 나를 보면 마음이 일어나는 곳, 의단(疑端)이라고 합니다. 몸과 마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만히 돌이켜보니 마음도 망상도 일체가 다 공(空)이고, 모두 다 없으니, 흔적도 없습니다. 그 자리는 있다 없다 공하다에 머물지 않는 것입니다. 유무, 공, 나아가 중간에도 머물지 않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위해 말씀을 드릴 겁니다. 저는 오랫동안 힘들게 공부하였지만 여러분에게는 이렇게 값싸게 말씀해 드립니다. 혜가대사처럼 눈이 쌓여도 일어나지 않고 법을 구하는 자세를 갖춰야 합니다. 그때 한마디 해줘야 좋습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법을 구하는 간절한 마음과 갈구하는 마음이 다하고 다할 때 한마디 해야 “알았습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더 이상 말할 것도 없습니다. 갈구하고 듣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법을 전해도 귀에 쏙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토요일인데도 산천 구경 가지 않고 법문을 들으러 오셨으니 여러분들은 법문들을 복의 인연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중은 알겠습니까?
    (주장자를 세워서 한 번 치고 들어보이시고 이르시되) “이것은 조사나 부처라고 해도 가까이 얻지 못함이니 이 무슨 사람인고?”
    조사도 부처도 아니라고 하고, 가까이 해도 얻지 못한다 하니 어찌해서 그런가? 조사도 부처도 아니고 중생도 아니고 물건이라고 해도 얻지 못한다고 하니 ‘무엇인가?’ 만약 이름과 글자가 있다면 이것은 조사요 부처요 중생이라 하나 총히 옳지 못합니다. 필경에 어떤 것인가? (주장자를 한 번 치고 게송으로 답해 이르시기를)
     

    게송을 전하겠습니다.

    鯨飮海水盡(경음해수진)
    露出珊瑚技(노출산호기)
    海神知貴不知價(해신지귀부지가)
    留與人間光照夜(유여인간광조야)

    고래가 바닷물을 마셔서 다하니
    산호가지가 드러남이로다
    바다의 용왕신이 귀한 줄을 아나 그 값을 알지 못하여
    인간세계에 광명을 밤에 비침이로다

    고래가 바닷물을 모두 마셔 없애버리니 산호가지가 줄줄이 드러났구나. 바다 의 용왕신은 산호가 귀한 것만 알지 그 값을 모르는 구나. 모든 사람이 세상에 있지만, 해와 달은 빛을 잃어버렸다는 말입니다.

     

    간화선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왜 간화선인지 그 이치를 알아야 합니다. 제가 출가해서 편강스님에게 묵조관법(黙照觀法)을 공부해본 일이 있습니다. 편강스님은 저에게 마음이 일어나고 멸하는 것을 들여다보면 일체 망상이 고요해지고 편안해진다고 했습니다. 그곳에서 문제가 해결되니 가만히 마음 일어나는 것을 살펴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열심히 하다 보니, 마음이 안정되고 고요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아무리 해도 무엇인가 의문점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상주 남장사에서 만옹 조실스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1956년 입산해 공양주(행자) 생활을 할 때였습니다. 조실스님이 저에게 무엇을 하는지 질문했을 때 (묵조관법으로) 공부를 하고 마음 자체를 들여다보고 있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조실스님은 “그래 그러면 그 마음을 갖고 오너라”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당시 묵조관법을 열심히 하다 보니 사람들의 심리가 다 보이고, 무슨 짓을 하고 왔다 갔다 하는지 다 보였습니다. 제가 만옹 스님에게 “견성한 게 아닐까요”라고 여쭙자, 스님이 “잘못하면 절에 무당하나 나오게 생겼다”고 하시며 주장자를 세 번 치고 “이것이 무슨 법문을 했는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그만 앞뒤 생각이 다 끊어지면서 캄캄한 절벽이 되어 지난날 알았던 것도 다 없어지고 도저히 알 수 없었습니다. 한마디도 말하지 못하니, 주장자로 어깻죽지를 때리면서 “네가 환희 안다며 왜 대답을 못하느냐”고 경책했습니다.

     

    그길로 공양실에 가서 밥을 하는데 의심(疑心)이 불길처럼 일어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엌도 없어지고, 솥도 없어지고는 부엌 안에 활활 타는 불무더기가 둥근달과 해처럼 우주에 꽉 차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솥 안에서 끓는 소리와 김이 나는 소리가 나는데 따끔하여 깨어나 보니 고무신에 불이 붙어 타고 있었습니다. 그 찰나에 그동안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졌던 짐을 내려놓은 것 같이 시원해지고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총무스님에게 공양간에서의 일을 말씀드렸습니다. “스님, 제가 이상한 게 있는데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총무스님은 “행자가 무슨 말이 많아. 일이나 해”라고 하여, 말도 못하고 그날은 일을 했습니다. 이튿날 총무스님에게 다시 말씀드렸습니다. 제 말을 듣고 난 총무스님은 게송을 옮겨 적었습니다.

    竈內火光蓋天地(총내화광개천지)
    鼎中湯聲脫古今(정중탕성탈고금)
    拄杖三下非別法(주장삼하비별법)
    目前歷歷只底是(목전역역지저시)

    부엌 안에 한 무더기 빛나는 둥근 불빛 천지를 덮고
    솥 안에서 끓는 한 소리 옛과 이제를 벗어났음이라
    주장자 세 번 치면서 무슨 법문이냐라고 하니
    목전에 역력해 다만 이것 뿐이로다.

     

       
     
    총무스님이 조실스님에게 가보라고 했습니다. 조실스님은 미소를 지으면서 “절에 와서 30년이 되도 이런 말 한마디 못하고 살아가는데, 행자가 밥값을 했구나”라면서 칭찬하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이게 다는 아니지, 내가 도에 대해 물어보겠다”

    수좌 둘이 길을 가는데, 앞에 가는 스님이 칼을 차고 가니 칼소리가 철렁철렁 났다. 뒤에 가는 수좌가 칼소리가 난다고 하니, 앞에 가는 스님이 아무 말 없이 손수건을 꺼내 뒤에 오는 스님에게 전해줬다. 그래 왜 수건을 꺼내 줬을까?

    여러분은 어떻게 답을 하시겠습니까. 이 내용은 전강스님, 박고봉스님, 금봉스님, 고암스님에게도 말씀드린 것입니다. 또 훗날 성철스님과 향곡스님에게도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저는 왜 수건을 줬느냐는 질문에 그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고 아이고’ 했습니다. 그리고 조실스님께 절을 하고 방을 나갔습니다. 그때 스님은 아주 좋아하시면서 공부를 잘하는구나라고 칭찬하셨습니다. 그 스님이 돌아가신 후에 저는 선방에 가서 정진을 했습니다. 그 후에 공부에 대한 소식이 많으나 오늘은 시간이 없어서 다 못하겠습니다.

    여러분, 간화선은 인생의 문제를 분명하고 결단력 있게 해결해 줍니다.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다른 여타 선은 중생이란 것을 전제로 하고 닦아 나가는 것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간화선과 차이가 있습니다. 중생을 전제로 하여 그 속에서 수행하고 마음 닦는 수행과 간화선은 다릅니다.

     

    간화선은 닦고 얻어지는 것을 부정합니다. 만약에 닦고 얻어지는 게 있다면 그것은 사도(邪道)이며 외도(外道)입니다. 닦아서 얻는다는 게 있으면 유위법으로 한계가 있습니다. 간화선은 그게 아닙니다. 역대조사는 부처님이 깨달으신 ‘천연바탕’을 중심으로 하여 멋지게 대용자재(大用自在)했습니다.

     

    시내는 오염되어 공해가 심한데, 산중에 들어가면 골짜기에서 맑은 바람의 기운이 나옵니다. 화두는 누가 주는 게 아닙니다. 화두를 주긴 누가 줍니까. 그런 소리 하면 안 됩니다. 간화선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역대조사가 화두를 준다고 합니다. 화두를 준 일이 없습니다. 내가 천연의 본바탕을 깨달은 절대적인 살아있는 생명, 이 기운을 준 것입니다. 지엽적인 말에 떨어지면 안 됩니다.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무(無). 화두는 살아있는 깨달음 자체를 몽땅 보여주는 것입니다.

    일구로 대답한 것을 바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위빠사나의 ‘알아차림’이라는 것을 아시죠. 관찰하고 느끼고 알아차린다는 것입니다. 간화선에서도 ‘알아차림’이 중요합니다. 위빠사나와 간화선의 ‘알아차림’은 차원이 다릅니다. 위빠사나는 중생심을 제거하는 수준이지만, 간화선은 닦아나아가는 것을 전제하지 않고, 단번에 다 끊어지게 만듭니다. 일체가 다 끊어져 자기 본바탕을 바로 보게끔 하는 게 간화선의 요체입니다.

     

    전국에 깨달은 수행자가 많습니다. 그래서 무수하게 깨달은 분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간화선은 무기로 말하면 핵폭탄 같은 위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화엄경이 어떻습니가“라고 질문한다면 참선한 분들은 한마디로 요약해 던집니다. “니 발밑에 풀이 석자나 자랐느니라” 그런데 이 한마디를 못 알아듣고 알아차리지 못하면 안됩니다. 툭하고 통하면 공부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 되어 버립니다. 한방에 해결됩니다. 이것이 간화선의 살아있는 한마디 ‘일구’입니다. 역대조사는 ‘일구’로 일러주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간화선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여러분 제일 쉬운 게 간화선입니다. 상대를 두고 말할 때는 “너는 무엇이냐?”고 하지만 내가 나를 지칭할 때의 “이놈은 무엇인가?”하는 여기에는 이치도 통하지 않고 문자도 말도 통하지 않습니다. 앞뒤 전후좌우 일체가 딱 끊어집니다. 부처니, 조사니, 경이니, 법문이니 일체가 다 끊어집니다. 딱 끊어진 그곳에서 과연 무엇인가? 이래도 저래도 삼십봉(棒)입니다. 부처라 해도 삼십봉, 그렇지 않아도 삼십봉입니다. 이것만 통하고 나면 1700 공안(公案)이 와르르 무너집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이 살아가는 인생은 정말 멋지게 됩니다. 극락이나 천당에 갈 것도 없이, 이 세상에서 멋지게 살아갑니다. 여러분이 마음먹은 대로 뜻한 대로 다 됩니다. 안 되는 일이 없습니다. 일체가 다 되기에 모든 일에 만족합니다.

     

    정말 이 세상에 이것보다 즐겁고 행복한 게 없습니다. ‘이놈이 무엇인고’하는, 이것 하나만 알아내면 됩니다. 알았습니까? 무엇입니까? 간화선은 여기에 그 핵심이 있습니다. 이 하나만 깊이 해결하면 다 됩니다.

    요즘 도인이 없다고 하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불교를 비방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그 말에 속지 마세요. 이번에 9명의 선지식이 초청받아 조계사에서 법문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분들은 모두 간화선을 수행한 분들입니다. 이번 간화선 법회에 나온 아홉분만 선지식이 아닙니다. 지금 세상에 나오지 않고 곳곳에 숨어 참선하며 도를 통한 수행자들이 꽉 찼습니다. 이 선지식들은 어디서 나왔는가. ‘무엇인고?’하는 간화선을 통해 나온 것입니다. < 대중 박수>

    여러분이 생활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밥 먹고 사는 일입니다. 직장을 다니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의무적으로 밥 먹고 일하러 가는데 사실 더 급한 일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행복을 찾지만 아무리 돈, 권력, 명예가 있어도 완전한 행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보다 더 급한 생각을 갖고 나는 무엇인고, 즉 내가 나를 알아보는 게 먼저입니다. 이것을 공부하면서 사회 일을 열심히 하면 그런 사람에게는 모든 일이 다 됩니다. 한국불교가 1700년 유구한 역사를 이어오면서 간화선을 중심에 놓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조계종이 우뚝 서 있는 것입니다.

     

    참선 수행자가 열심히 공부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릇이 있어야 물을 담을 수 있습니다. 옛날 어느 수행자가 일주일을 공부하면 제석천신이 신도를 시켜서 공양을 조달한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산속에서 일주일간 공부를 해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수행자는 제석천신이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고는 밖으로 나와 “제석아”하고 소리쳐 불렀습니다. 그때 마침 지게를 지고 도시락을 싸서 근처에 나무를 하러온 사람이 있었는데 그 나무꾼 이름이 제석이었습니다. “제석아”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은 나무꾼은 “예”하고 대답했습니다. 그 수행자는 제석천신이 정말로 있구나 생각하고 “왜 밥을 가지고 오지 않느냐”라고 소리쳤습니다. 제석은 “밥가지고 갑니다” 하고 올라가서 도시락을 전달했습니다. “앞으로도 밥을 먹어야하니 계속 가지고 오너라”고 하니 “예”하고 대답을 하고 내려갔습니다.

     

    산에서 내려온 나무꾼은 주인에게 “산에 갔더니 공부하는 수행자가 있는데 굶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주인 부부는 매일같이 밥을 갖다 주도록 했습니다. 8년이 지난 어느 날 주인 부부가 “스님얼굴을 한번도 못보았으니 오늘은 얼굴을 보고 옵시다”하고 수행자를 보려고 산에 올라갔습니다. 때가되어 스님이 밥을 가지러 나와보니 두 부부가 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석이가 나이가 들어 결혼을 했구나”라고 하니 “예”라고 대답하면서 “스님 얼굴이 달처럼 환하고 밝습니다.”라고 말을 건넸습니다. 수행자는 그 소리에 탁하고 깨닫고 춤을 둥실둥실 추니 부부가 그 모습을 보고 또 도를 깨달았습니다. 수행자와 시봉하는 분이 함께 도를 깨달은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에 수행자를 시봉하면 함께 도를 깨닫는다고 했는데 이것이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입니다.

     

    수행자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간화선을 세계에 펼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아침저녁으로 ‘나는 무엇인고’를 물으시고, 열심히 정진해 주기 바랍니다. 선방 수좌들도 공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여러분도 함께 성불하고 도통할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십시오.

    一屈金光獅子兒(일굴금광사자아)
    相將無事共遊嫸(상장무사공유선)
    同時啐啄知機變(동시졸탁지기변)
    鳳轉龍盤也大奇(봉전용반야대기)

    한 굴에 금으로 빛나는 사자요
    서로 일이 없이 한가지로 기쁘게 노는구나
    동시에 졸탁하여 아니 그 기틀이 변함이요
    봉황과 용이 소반에서 구르니 크게 기특함이로다

    여러분이 사자입니다. 간화선 화두가 꽉 찼습니다.

     

    출처 : 조계사 포교사회
    글쓴이 : 서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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