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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포교사들이 생각해야하는 전도서언의 의의불교 2013. 4. 4. 19:46
◈포교사들이 생각해야 하는 전도선언 의의◈
종교의 생명은 포교이며 포교를 등한시 할 때 그 종교는 좌초되거나 소멸되는 것을 우리는 종교역사를 통해서 익히 알고 있습니다.
불교의 종주국인 인도가 10%미만의 불교신도를 갖고 있다는 것이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음을 상기 하면서 붓다의 간절한 소망의 실천으로
초기 고진여등 5비구와 야사와 그의 친구 등을 합한 60여명의 불법증득 재가자가 형성 되었을 때 서둘러 전도선언을 하면서 두 사람이 함께 가지도 말며 각각 흩어저서 전하며 부처님 자신도 장군촌[세나니가마]으로 가겠다는 결연한 의지에서 ..............
전도 즉 포교의 의의를 찾아야 될 것 같습니다.
▣ 전도 선언은
●<잡아함경> 권39,1096(繩索經) 과
●<쌍윳따 니까야>相應部에 언급된 것을 접할 수 있는데 내용상 비슷함으로 인식하고 넘어 가기로 하겠습니다.
세존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나는 신과 인간의 굴레에서 해방되었다.
그대들 역시 신과 인간의 굴레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법을 전하러 길을 떠나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세상을 불쌍히 여겨 길을 떠나라.
마을에서 마을로..
두 사람이 같은 길을 가지 말고 혼자서 가라..
비구들이여..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법..
조리와 표현이 잘 갖추어진 법을 설하라.
원만하고 완전하며 청정한 행동을 보여주라..
세상에는 때가 덜 묻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법을 듣지 모하면 퇴보하겠지만
들으면 분명 진리를 깨달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나도 법을 전하러 우루웰라의 세나니 마을로 갈 것이다..
<잡아함경> 권39,1096.
전도선언을 3 가지로 나누어 보면
첫째 : 전도의 나설 자격 이다.
◆ “신과 인간들의 사슬에서 풀려난 사람.”
◆“남을 가르칠 만한 지혜와 자격을 갖추어야 되는 사람.”
※ 오늘날 우리 포교사들은 종단 종법 정책에 의거 포교사로 품수
받은 그 자체로 자격이 있다고 볼 인가 ? 아닌가?의 문제는 차치하고
둘째 : 전도의 목적 이다.
◆세간의 이익과 안락을 위하여 행복을 위하여 .....
◆중생제도를 위한 대자대비심의 발로.
셋째 : 설법의 방법
◆처음, 중간, 끝도 좋으며. 좋은 법....
◆조리와 표현이 잘 갖추어진 법을 설하라.
◆의리와 표현을 고루 갖추어야 한다.
◆논리 정연하게 설하여 상대방이 완전히 이해하고.....
저는 위 3가지 중 [셋째 : 설법의 방법]에서 논하고자 합니다.
흔히들 포교는 수행이라고 합니다. 수행 따로 포교 따로 분리하지 않는 일체감에서는 굳이 수행 때문에 포교를 할 수 없다는 핑계를 예단한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의 사전적 용어는 다르며. 총론은 같아도 각론은 다르다고나 할까 ?
포교(布敎) === 불교교리를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 믿게 하고, 충분히 이해하게 하며, 실천하게
함으로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완성을 통하여 사회전체를 지혜와 복덕이
충만한 불국토를 이룩하는데 지표(指標)가 두어져야 한다. 이것은
※ 이타(利他)에 속한다.
수행(修行) === 자신을 닦는 것이다. 즉 마음을 닦는 것이다. 중생은 모두 여래의 태(佛性)을
가지고 있으므로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마음의 업(業)의 때가
끼어 더렵혀져 있다. 이 때를 닦아내는 과정(process)이 곧 수행이다.
※ 자리(自利)에 속한다.
포교의 방법은 기술(技術) 이며 기법(技法)이라 생각합니다.
전달 방법에 의해서 결과발생의 명(明) 암(暗)이 확연히 구분 되는 것입니다.
포교의 의의가 부처님 말씀을 전달하는데 있다고 전재 한다면
스스로의 작곡 작사는 금물이라는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을 제작하거나 조작하거나. 본말이 호도 되거나. 본 뜻이
이탈 되어서는 안 된다는 대 원칙하에 시작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작금의 우리의 현실은 그러하지 아니 하다는데 우려성을 자아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 전달 방법은 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지만.
언어의 불확실성에 대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언어의허구성을 인식하고 시작해야 될 것입니다.
예 : “아프다” 라는 말은 얼마나 “아프냐 ?‘” 에 대한 구체성을 조금,많이, 아주 많이, 아주작게, 하
늘 만큼 땅만큼.의 전재가 붙어도 아픈 질과 량을 전달하게에는 언어의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
다.
또한 같은 내용이라도 음성의 고 . 저와 속도의 신속에도 받아 드리는
감정은 다르다는 것이며
♠ 전달방법은 태도와 무언의 전달에도 신경을 써야 할 부분입니다.
예 : 나직한 음성으로 정 자세로 설법한다든가 ?
움직이면서 관심도를 집중시키며. 제스쳐로 비언어적 의사소통도
전달방법에 한 몫을 한다는 것입니다.
♠ 때로는 웅변식으로 . 때로는 호소식으로. 때로는 토론식으로.
대상과 내용. 분위기. 등등을 봐서 하는 것을 “대기설법”이라 명명해
주었는데 우리가 실천하고 있느냐? 의 문제는 문제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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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불교에서는 믿음보다 이해를 더 중요시 했습니다.
그것은 불교 태동시 6사 외도라는 시대적 종교논쟁에서 적자생존의 법칙
이 작용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후대의 대승불교에서는 믿음이 이해보다 앞선다고 주장 됩니다.
불교가 갖고 있는 수많은 이론과 논리성에 묻어 헤어나지 못하는 교적 신앙에서 선(禪)등 믿음과 수행 제일로 변했다는 것입니다.
고려시대의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 스님은 = 진심직설(眞心直說)에서
“ 믿음은 있으나 올바른 이해가 없으면 무명(無明)만 증장(增長)하고
이해는 있으나 참다운 믿음이 없으면 삿댄 견해만 증장한다.
그러므로 알라.
믿음과 이해가 겸해야 도(道)에 들어감을 빨리 얻는다.
▣ 해마다 수없이 많이 배출되는 포교사님들의 포교활동 범위가 포교사단에서 지정해준 군 포교등 봉
사활동등은 수행이라 받아 드리면서
한 장을 넘기면 하얀 백지위에
진실로 포교를 갈망하는 곳을 찾고. 수련되고 세련된 포교활동을 위해서 뛸수 있는 광활한 곳이
도처에 있다는 것이 현실성 일 것입니다.
포교활동의 패러다임(paradigm=틀) 즉 사고의 틀을 바꾸기 위해서 .
저희 조계사소속 제17기 포교사모임에서는 자력으로
[포교사의 설법방법] 등 설법에 대한 기술적면을 집중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실질적이며 리얼하게 진행하기 위해서 특강 강사를 초빙 1차 수강을 끝내고 계속되는 수강을 통해서 포교사로서의 부족한 점을 노력으로 보완하고자 합니다.
물론 시간이 지남에 따라 1:1 교육으로 진행 할 것입니다.
필요시 언제 어디에서나 불법홍포에 주저함이 없이 사자후를 발할 수 있는 포교사가 되기위한 자정의 노력에 더 많은 동참과 지도편달을 바라면서
격려를 부탁합니다.
2012. 11. 19.
무야 올림.
출처 : 조계사불교대학동문회글쓴이 : 무야[53無也] 원글보기메모 :'불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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