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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백두대간 종주 1구간 지리산 종주 (성삼재~천왕봉~중산리)송아 김현숙/상담하자 2011. 11. 28.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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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삿갓 한문규님의 산행기 원문에 사진 추가)
산행일자 : 2005. 8. 14~ 8. 15
산행인원 : 방수재. 이재원. 삿갓(한문규). 김동혁 , 그리고 크로바 산악회
산행날씨 : 14일 - 맑은후 흐림
15일 - 흐린후 맑음산행거리 : 첫째날 - 23.27㎞+4.0㎞〈셀파산장자료〉
성삼재 - 3.5㎞ - 노고단 - 2.23㎞ - 돼지평전 - 1.05㎞ - 임걸령 - 1.4㎞ - 노루목 - 2.0㎞- 반야봉 - 2.0㎞ - 노루목 - 0.75㎞ - 삼도봉 - 0.75㎞ - 화개재 - 1.25㎞ - 토끼봉 - 2.94㎞
- 연하천 - 2.05㎞ - 형제봉 - 1.3㎞ - 역소령 - 2.55㎞ - 선비샘 - 1.50㎞ - 칠선봉 - 2.0㎞ - 세석대피소 (1박)
둘째날 - 4.86㎞+4.78㎞〈셀파산장자료〉
세석대피소 - 0.6㎞ - 촛대봉 - 1.86㎞ - 연하봉 - 0.80㎞ - 장터목산장 - 1.6㎞ - 천왕봉 - 1.98㎞- 법계사 - 2.8㎞ - 청소년수련장
산행고도 및 시간
첫째날
성삼재 (고도 1,070m) - 4:20
노고단 (고도 1,507m) - 5:16~5:40
임걸령 (고도 1,320m) - 6:47~8:00 (아침식사)
노루목 - 8:40
반야봉 (고도 1,732m) - 9:20
노루목 - 10:00~10:15
삼도봉 (고도 1,499m) - 10:43~10:50
화개재 (고도 1,315m) - 11:25~11:33
토끼봉 (고도 1,534m) - 12:15
연하천 (고도 1,440m) - 1:50 ~3:30 (점심식사)
벽소령 (고도 1,340m) - 5:20
선비샘 (고도 1,495m) - 6:44
칠선봉 (고도 1,558m) - 7:40~8:10
세석대피소 (고도 1,560m) - 9:40 (1박)둘째날
세석산장 (고도 1,560m) - 7:00
촛대봉 (고도 1,703m) - 7:25~7:35
연하봉 (고도 1,730m) - 8:46
장터목 (고도 1,653m) - 9:00~9:22
제석봉 (고도 1,806m) - 9:36
천왕봉 (고도 1,915m) - 10:40~11:40 (정상주)
법계사 (고도 1,335m) - 1:00~1:17
자연학습장 - 2:19
지리산.
전라북도 남원시 , 전라남도 구례군 , 경상남도 산청군 , 하동군, 함양군에 걸쳐있는 산으로 높이 1,915m이다.신라 5악의 남악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하여 지리산(地理山)이라 불렀고,
멀리 백두대간이 흘러왔다”하여 두류산(頭流山)이라고 하며 옛 삼신산의 하나인 방장산(方丈山)으로도 알려져 있다.남한 내륙의 최고봉인 천왕봉(1,915m)을 주봉으로 하는 지리산은 서쪽끝의 노고단(1,507m), 서쪽 중앙의 반야봉 (1,751m)
등 3봉을 중심으로 하여 동서로 100여리의 거대한 산악군을 형성한다.천왕봉에서 노고단에 이르는 주능선을 중심으로 해서 각각 남북으로 큰강이 흘러 내리는데
하나는 낙동강 지류인 남강의 상류로서 함양 산청을 거쳐 흐르고
또하나는 멀리 마니산과 봉황산에서 흘러온 섬진강이다.
이들강으로 화개천, 연곡천, 동천, 경호강 ,덕천강 등 10여개의 하천이 흘러들며
맑은물과 아름다운 경치로 “지리산12동천”을 이루고 있다.
지형은 융기작용 및 침식. 삭박에 의해 산간분지와 고원 평탄면이 형성되어 있고 계곡은 깊은 협곡으로 되어 있다.
최고봉은 성록암으로 되어 있고 주변은 화강암, 화강편마암의 지질이 넓게 분포되어있다.
화엄사. 천은사. 연곡사. 쌍계사등 유서깊은 사찰과 국보, 보물등의 문화재가 많으며,
8000여종의 식물과 400여종의 동물등 동식물상 또한 풍부하다.
1967년 국립공원 1호로 지정되었다.
첫째날
2005년 4월 17일 백두대간을 시작하면서 입산 금지기간으로 밟지못하고 남겨두었던
천왕봉에서 성삼재까지의 마루금을 광복절 연휴를 이용하여 종주하기로 하였다.
몇 년만의 지리산 종주인지 헤아릴수도 없고 설레는 마음뿐이다.
세석대피소의 예약을 15일전에 인터넷으로 하고 대원들과 서로 연락하며 차근차근종주 준비를 해나간다.
침낭이며 옷가지 2일간의 식량 및 간식등을 배낭에 넣고 무게를 달아보니 17㎏이다.
장난아닌 무게의 배낭(전문 산꾼에게는 가벼운 배낭)을 메고
사모님과 함께 15일 복날의 산행 영양식을 준비하기 위하여 집을 나선다.
수지에 있는 유명한 장어구이집에서 우리 일행의 영양식 3㎏을 준비하여
우리의 애마에 승차 할수 있는 죽전 정류장으로 향한다.
죽전 정류장에서 잠시의 기다림으로 일주일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이 승차해 있는 애마에 오른다.
반가운 눈인사와 새로 합류한 얼굴들과의 어색한 만남을 뒤로하며 지정석인 뒷자리로 향하여 후미팀과 합류한다.
뒷자석에 앉아 지리종주에 대한 이야기 꽃을 피우며 미리 준비한 안주로 수면재겸 무사 산행을 기원하는 술잔을 한바퀴 돌린다.
한바퀴가 두바퀴가 되고, 세바퀴되고 하여 대병 한병을 비운후 내일 산행을 위하여 취침 한다.
설레는 마음과 두려운 마음이 교차하는 가운데 우리의 애마는 성삼재 주차장에 도착한다.
대간의 첫시작인 천황봉에서 대간의 첫시작을 하지 못하고
역으로 성삼재에서 천왕봉으로 마루금을 이어가기로 하고 부지런히 산행준비를 마치고
만복대로 향하던 발걸음의 반대쪽으로 노고단을 향한다.성삼재에서 노고단으로 향하는 길은 포장도로와 돌을 깐 길이 연속으로 가파르지는 않지만 오르막의 연속이다.
배낭의 무게를 느끼며 부지런히 걷다보니
한쌍의 남녀가 물한병들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올라가는 모습이 부럽기만 하다.
이마에서 땀이나고 웃옷이 반쯤 젖어갈 즈음 노고단 산장에 도착한다.
산장에 숙박한 산객과, 내방객으로 초만원이다. 서둘러 산장을 뒤로하고 노고단을 향한다.
노고단(정상은 입산금지)에 도착하니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서둘러 카메라에 노고단의 풍경과 일행을 사진에 담는다.
새벽등반후 맞는 일출은 어디에서나 장관이지만 노고단에서 맞는 일출이 여느곳보다 화려하고 아름답게만 느껴진다.
밝아오는 하늘에 구름이 춤을 추듯 날아간다. 여명의 기쁨을 가슴속에 담고 임걸령을 향하기 위해 돼지평전을 바쁘게지나친다. 돼지평전에서는 섬진강이 보인다고는 하지만 우리눈에는 오로지 푸른 산만 보일뿐이다.
돼지평전에서 평탄하고 부드러운길을 30여분 진행하니 임걸령이다. 지리산에서 물맛이 가장 좋기로 유명한 곳이다.
임걸령의 시원한 물을 합모금 마시기 위하여 왼쪽으로 내려가니 오늘도 목마른 산객을 위하여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내고있다.
물한모금 마시고 옆을 보니 샘터 바로옆에 취사객이 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샘터 바로 옆에서는 취사를 금지했으면하는 생각을 갖는다.
6:47분. 일행의 민생고를 해결해야 할시간이다. 아침은 임걸령에서 점심은 연하천, 저녁은 세석으로 계획하였다.
임걸령에서 100m진행하니 10여명이 앉을수 있는 주막터가 나타난다. 서둘러 전날 수지에서 준비한 장어구이 등을
안주삼아 정상주 아닌 등정주를 복분자술로 한잔하며 아침을 해결한다.
임걸령에서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면 노루목에 도착한다. 여기서 좌측으로 가면 반야봉이고 직진하면 삼도봉이다.오늘안에 세석에 도착하면 되지 하는 생각(나중에 고생)으로 백두대간 마루금에 포함되지 않고 한쪽으로 비켜앉은
반야봉을 향하여 좌회전을 한다. 40여분 바위길등을 힘들게 올라서면 지리산의 제2봉으로 일컬어지는 반야봉에 도착한다.
반야봉. 지리산 산신중 천신의 딸인 선도성모, 마고할미, 노고라 불리는 여신이 지리산에서 불도를 닦고 있는 도사 반야와
결혼해 천황봉에서 살았다. 그들은 딸만 8명 낳았고 반야는 더 많은 깨우침을 얻기위해 가족과 떨어져 반야봉으로 떠났으나
마고할미가 백발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마고할미는 반야봉에서 깨우침을 얻기 위해 외로이 수도하는 남편 반야를
그리며 나무껍질을 벗겨 남편이 입을 옷을 만들고 딸들을 한명씩 전국팔도에 내려보내고 홀로 남편을 기다린다. 기다림에
지친 마고할미는 끝내 남편 반야를 위해 만들었던 옷을 갈기갈기 찢어버린뒤 숨지고 만다. 갈기갈기 찢겨진 옷이 바람에
날리어 반야봉으로 날아가 반야봉의 풍란이 되었다고 전한다. 후세 사람들은 반야가 불도를 닦았던 봉우리를 반야봉이라
불렀고 그의 딸들은 8도 무당의 시조가 됐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인지 반야봉 주변에 안개와 구름이 자주끼는데 하늘이
저승에서나마 반야와 마고할미가 만날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 한다.
반 야 봉봄바람에 큰 기지개 켜면
겨울을 쓸고간 해빙기가 성큼 다가설텐데코끝을 휑 지키려는 듯
신갈. 시닥나무. 귀중나무 키재기 하듯
풋풋한 젊은, 패기로 버텨온 세월먼곳에서 해풍과 함께 밀려오는 것처럼
돛대도 없이 외로운 뱃날 세우듯 공허 세우고
반야 반야 바하 바라 밀
108번뇌에 이르고 고뇌에 쌓인 산천초목
아품새겨 가슴 쓸어 내리는
거친 광야에 내몰린 반야봉의 외로움이여!
슬쩍 다녀와도 기록속에 포함시킬수 없다네.- 이 용 주 -
반야봉에 올라 대간 처음시작 할 때 우리 일행이 지나간 고리봉. 묘봉치. 만복대 등을 조망하고 돌아서니 저멀리
지리산의 주봉인 천왕봉이 손짓하며 우리를 유혹한다. 손에 잡힐듯 다가와 있는 천왕봉의 웅장한 자태에 넋을 잃고
한동안 바라본다. 일행 및 주변 풍광을 카메라에 담고 대간마루금을 잇기 위해 노루목으로 되돌아 선다.
노루목에 도착하여 잠시 숨을 고른후 대간 마루금을 다시 잇는다. 삼도봉(날나리봉)에 도착 전남.경남.경북의 땅을 한번씩
밟고 인사하고는 화개재로 향하는데 내려가는 계단이 장난이 아니다. 나무계단의 길이가 240m에 수가 552개인데 내려가는
길이라 수월하지만 올라올때는 여러번 숨이 넘어가야 오를것만 같다. 화개재에 도착 토끼봉을 오르기 위한 숨을 고른다.
화개재 왼쪽의 뱀사골 산장 갈림길을 통과하고 토끼봉 오르는 길은,
삼도봉에서 계단으로 내려온만큼의 고도를 다시 올려야 한다.
가뿐숨을 몰아쉬며 헐떡거리길 40여분 , 토끼봉에 올라 숨한번 돌린후 연하천을 향하여 달려가니
내리막길은 평탄하나 다시금 오르막의 오름과 십분간의 나무계단을 거쳐 연하천 산장에 도착한다.
연하천에 도착하니 여기저기서 취사 하느라 발붙일 틈이 없다
간신히 간이 화장실 옆의 공터(바람이 불때면 장난이 아님)에 자리잡고
굶주린 짐승(남자)들을 만족시켜 주기 위하여 여인네 두분이 자청하여 점심 공양을 준비한다.
구수한 된장 내음이주변에 가득 할때쯤 삥둘러 앉아 허기진 배를 채운다.
먹은만큼 간다고 하니 식욕이 없어도 꾸역꾸역 집어 넣는다.
사람이 죄를 짓고 못산다 하더니
내가 단골로 다니는 미용실의 원장님을 이곳 연하천에서 뵐수가 있었다.
주변정리후 쓰레기를 배낭에 넣고 출발하여 시계를 보니 3시 30분이다.
예정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앞으로 남은거리와 시간을 계산하니 예정보다 3시간이 늦었다.
대간 마루금에서 벗어나 반야봉을 다녀온 시간과 식사시간을 너무 길게 잡은것 같다.
오늘 해지기전엔 세석에 도착하기가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며 속도를 붙여본다.
연하천을 출발하여 평탄한길을 20여분 지나 삼각고지 근처의 전망바위에서
형제봉을 힐끔 쳐다보고 하늘도 보이지 않는 구불구불한 길을 제촉하여 걷는다.
한시간여를 걷다 보니 벽소령 산장이 눈에 들어오길 시작한다.
앞에 가는 팀에게 어디서 묵을것인지 물어보자
벽소령에서 묵는다 하니 부러움이 절로 생겨난다.
벽소령에 도착하여 수통에 물을 채우고 출발한다.
부드러운 길을 20여분 진행하니 비박을 준비하는 팀이 여기 저기 눈에 띤다.
다리도 아프고 피곤하다 길게 누워 하늘을 쳐다보며 휴식을 취한후 다시 일어나 갈길을 재촉한다.
선비샘 조금 못미쳐 공단 관리직원이 커다란 배낭을 앞뒤로 메고 오고
뒤에는 관리직원의 부축을 받은 여인네가 절뚝거리며 다가온다.
무리한 산행으로 무릎관절이 손상돼 벽소령으로 후송중이란다.
소지하고 있는 붙이는 침을 건네며 안산할것을 다시금 부탁하며 선비샘으로 향하는데
공단직원이 선비샘에서 비박하는 분들을 전부 철수시켰다고 한다.
우리는 세석까지 간다고 하며 선비샘으로 향한다.
선비샘. 옛날 상덕평 마을에 가난하고 천대받으며 살아온 노인이
죽어서라도 사람대접 한번 받아보는것이 소원이라는 유언을 남기자 아들들이 샘터위에 무덤을 만들어
사람들이 샘에서 물을 뜰때면 반드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므로 이 무덤에 절하는 격이되었다 한다.
생전에 갖은 고생과 천대속에서 화전민으로 살아온 노인의 애틋한 소망이 실제로 십여년전 까지만 해도 실현되었는데
지금은 무덤도 안보이고 파이프로 연결하여 서서 받도록 되어 있다.
주변에 야영한 흔적이 곳곳에 있으나 쓰레기가 가득차고 습기가 무척 많아
야영지로 적합한곳이 못되고 오가는 길손의 갈증만 풀어줄수 있을 뿐이다.
선비샘에 도착하여 물한바가지 마시고 칠선봉을 향하는데 주변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 속도를 내어본다고 하지만 배낭의
무게와 지친몸이 자꾸만 그 자리에 주저 앉게만 한다. 칠선봉에 도착하여 힘을 내기 위한 마약(소주)을 두순배씩 돌리고
야간산행준비후 세석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힘들고 피곤한 산행이지만 같이하는 일행이 있어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
어두운 산길을 헤드랜턴에 의지한채 뚜벅뚜벅 걸다보니 저멀리 세석산장의 불빛이 눈에 들어온다. 영신봉에 도착하니 길
양옆으로 텐트며 비박하는 산꾼으로 가득하다. 흡사 전쟁터의 피난민 같은 모습이다. 이렇게 까지 하면서 산에 와야 하나
하면서 세석으로 향하는 내리막길을 천천히 내려간다.
세석대피소. 4시 20분 성삼재를 출발하여 무려 17시간 20분 걸렸다. 식사시간 2시간 40분, 반야봉 1시간 20분등을 포함한
시간이지만 산에서 하루동안 17시간이상 헤맨것은 처음이다. 세석에 도착하니 산악회 선배님께서 보안등 밑에 자리를 잡고
계신다. 배낭을 내려놓기 무섭게 나의 어깨를 내리누른 복땜용 삼계탕을 요리하여 일행과 함께 늦은밤의 만찬을 즐기고
내일을 기약한다.
둘째날
대피소 2층 복도(침상은 너무 늦게 입실하여 타인이 차지하고 취침중이라 깨울수도 없고 하여
복도에서 취침)의 곤한 잠도 3대가 복을 지어야만 볼수 있다는 천왕봉의 일출을 보기 위한
산객들의 소란함으로 이내 일어나고 만다.
6시에 출발 하기로 하고 아침을 준비하나
어제의 피곤함과 대피소의 많은 인원으로 인한 혼돈으로 지체되어 7시에 세석을 출발한다.
세석산장을 뒤로하고 세석평전의 화려함(봄의 철쭉제)도 보지 못하고 완만한 오름을 즐기며 촛대봉으로 향한다. 촛대봉에
오르니 반야봉에서 보았던 자태보다 훨씬 웅장한 천왕봉이 눈앞에 성큼다가와 있다. 촛대봉은 지나온 길을 물론 앞으로
나아갈길까지도 남김없이 보여주는 지리산 제1의 조망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조망좋은 촛대봉을 기념하기 위한 촬영을 한후
아쉬운 작별을 한다.
촛대봉에서 연하봉가는 길은 잠시 내려가다 이리돌고 저리돌며 이곳저곳에 지리산의 비경을 감상할수 있는 전망터를 제공한다.
연하봉 조금 못미쳐 일행중 한분인 변용경님께서 좌측으로 고개돌려 하신다.
땅에 코를 박고 진행하던 일행은 영문도 모른채 좌로 고개를 일제히 돌리니
오색찬란한 무지개가 저멀리 능선위에 떠있다.
출발 때 부슬부슬 비가 내리더니 저런 선물을 주기 위한 준비구나 하면서 모두들 촬영하기에 여념이 없다.
무지개를 좌측으로 두고 연하봉을 통과하고 장터목 산장으로 내려가니 지리산의 절경이 또한 나타난다. 지리산의 준봉을 넘고넘어 저멀리 섬진강까지 우리의 시야에 들어온다. 고사목을 배경으로 연신 셔터를 눌러대고 샘터에서 물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우리의 목적지인 천왕봉으로 오르는 급한 오름을 오른다.
어제의 피곤함으로 제석봉으로 오르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제석봉에서 몇 번의 오름과 철계단을 오르다 보니 통천문이 나타난다.
강대석님께서 얼른 올라 도사의 폼을 잡는다.
일행은 도사님에서 천왕봉에 오르는 마지막 관문 통과를 허락 받고
통천문을 지난다. 저멀리 천왕봉의 정상석이 우리를 부른다.
부지런히 오르니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란 정상석이다.
천왕봉. 경상남도 산청군 사천면과 마천면 경계에 솟은 지리산의 최고봉. 해발고도 1,915m로 남한에서 한라산(1,950m)다음
으로 높다. 거대한 암괘가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으며 서쪽 암벽에는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라는 의미의 “천주”
라는 음각글자가 있다. 정상에는 1982년 경상남도가 세운 높이 1.5m의 표지석이 서있다. 함양방면으로는 칠선계곡을 이루고
산청방면으로는 통신골, 천왕골(상봉골)을 이루어 중산리 계곡으로 이어진다.
바위로 이루어진 정상은 항상 구름에 싸여있다.예로부터 3대에 걸쳐 선행을 쌓아야 이곳에서 해돋이를 볼수있다는 말이 전해올 정도이며
지리산 8경가운데 제1경이 천왕 일출일 만큼 해돋이가 아름답다.
정상에 1간크기의 돌담벽에 있고 그안의 너와집 사당에 성모상이 안치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빨치산에 의해 파손된뒤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다.
정상 아래에는 큼바위틈에서 샘물이 솟아나오는 천왕샘이 있다.
정상에 오르려면 동쪽으로 개천문(개선문)남서쪽으로 통천문을 거쳐야하며
이외에 칠선계곡을 지나는 날카로운 비탈길과 대원사에서 중봉을 거쳐 오르는 험난한 길 등이 있다.
법계사를 지난뒤에 나오는 개천문은 “하늘을 여는 문”이라는 뜻으로 지금은 개선문으로 알려져 있다.
통천문은 “하늘을 오르는 문”이라는 뜻으로 노고단에서 천왕봉으로 오르는 마지막 관문이다.
통천문은 천연암굴로 사다리를 타야 지날수 있는데 예로부터 부정한 사람은 출입할수 없고
선인(신선)들도 반드시 이곳을 통과해야 정상에 오를수 있었다고 한다.
천왕봉에 올라 백두대간의 종주의미를 다시한번 되새기며 통일이 되면 북쪽의 대간길로 걸어보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서둘러 정상석에서의 기념촬영을 하고 얼른 방을 비워준다(사진 찍느라 대기조가 많음)
정상을 한바퀴 돌며 지리산의 비경을 마지막으로 마음속에 담아두고
정상주를 마시기 위한 자리로 옮기며 이용주님 시 천왕봉을 읊조린다.
천 왕 봉
지리 지루하여 지리산이라 했던가?
어느곳에서 올라도 이백여리길넘다 보면 다 넘어갈테고
떳다 감으면 세월도 흐를테고....수년을 걸려서라도 백두산까지 가고자 하는
그시발점 중산리에서 천왕봉에 이르기를한발자국 또 한발자국, 맨발로 걷고 걸어
백두천지를 향해 끝없이 가리라.꽃피는 봄 속에서도 눈내린 겨울이듯
녹음속 단풍진 가을 쫒아 겨울이 다시 올때까지추억속으로 빠져간 천왕봉의 돌탑마저
역사로 풀어내는 따사한 향기 일레라.- 이 용 주 _
세석에서 알콜이 없다는 말은 거짓이 되고
정상주를 마시기 위한 산꾼들의 치밀한 계산에서 숨겨놓은 3병의 정상주가 나와
우리는 남한의 최고봉인 천왕봉 정상주를 최고의 기분으로 마신다.
경상도에서 올라오신 3040클럽 회원님중 횟집을 하는 분이 가져오신 싱싱한 병어회를 선물받아 안주를 삼으니
정상주중 최고의 정상주를 마시는 호사를 더한층 높여간다.
일출을 보기 위해 일찍 출발한 크로바 산악회 회원들의 기다림을 줄이기 위해
천왕샘에서의 물한모금으로 두다리에 힘을 실고 법계사로 내달린다.
산잘타는놈 산에서 죽는다고 천천히 다니라고 하던 나도 시간에 쫒기다 보니 별수없이 내달려
법계사에 도착하여 물속에 냄새나는 발한번 담그고
다시 내달리니 이번 산행에 처음 참여하신 임호근님은 군대에서도 이런 행군이 없다고 혀를 내두른다.
옷은 흠뻑젖고 발바닥에 불이 날즈음 자연학습장에 도착하여
대장님에게 연락하고 지리산 종주를 맞추지만
다시한번 천왕봉에서 시작하여 노고단으로 향하는 종주를 위하여 지리산에 다시 오고 싶다.
산에 가고 싶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시원하고
누구와 함께 하지 않아도 외롭지 않은
혼자여도 결코 쓸쓸하지 않고
아무리 서러워도 눈물이 나지 않는
그 산에 가고 싶다,이제는 나도
애써 기다릴 그 무엇도 없고
버리지 못할 인연도 없지 않은가꽃 피는 봄에도
산은 호들갑을 떨지 않고
잎 지는 가을에도
산은 결코 슬퍼하지 않는다.
무성한 여름에도
가득 찬 것을 자랑하지 않고
텅 빈 겨울에도
가진 것이 없다고 말하지 않는그산에 가고 싶다.
- 고 양 규
함께 산행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글을 한국의 산하에 먼저 올려 주신 한 문규님 에게도 감사 드립니다)
출처 : 김 동혁의 산행일지글쓴이 : 김동혁 원글보기메모 :'송아 김현숙 > 상담하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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