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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랩] [한남정맥12] 가현치 - 상봉 - 국사봉-뒷산 -삼죽면-도덕산-관해봉-칠장산
    한북정맥(완주)/한남정맥(완주) 2014. 2. 24. 10:16

    [한남정맥12] 가현치 - 상봉 - 국사봉-뒷산 - 삼죽면-도덕산-관해봉-칠장산

     

    2014년 2월  6일

     

    송아, 가진, 요물

     

    ○산행코스 :천주교공원묘지입구 - 가현치 - 상봉 -덕재고개 - 국사봉 △489- 턱골고개 - 임도 - 뒷산△271.6 - 임도

                      -82. 79번도로 - 삼죽면 - 38번 4차선도로(만남의광장) - 굴다리 - 나촌동 -도덕산안부 - 도덕산 △366.4

                     - 관해봉 △456 - 칠장산 △492.6 - 헬기장 - 분기점 - 칠장사 -유달마을

     

    ○산행거리 : 접근거리 0.61km + 정맥거리 12.1km + 하산거리 1.5m = 14.2km     산행거리: 16.43km

     

    ○산행시간 : 9시 25분 - 4시 40분 [7시간 15분]

     

     

     

     

    [산행지도]

     

     

     

      급행전절을 타고 평택역에서 내렸다.     친구가 같이 동행한다는 연락이 오기에 시외터미널로 가는 길목 분식집에서 기다렸

    다.     라면을 먹고 친구가 오고 시외터미널앞 50번 버스에 올라  평택과 공도를 지나 안성 한국통신 앞까지 오는데 시간이 예

    상보다 많이 걸려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9시 정각였다.     미리 와 있는 송아님과 만나 15-1번, '가치레미'로 가는 버스를

    아슬아슬하게 환승할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버스는 보개면 고삼저수지가를 지나 82번, 70번 지방도를 따라 우회전 하면선 천주교수원교구 공동묘원 앞에서 우리를 내려놓

    고 되돌아 나갔다.   

     

    지방도로를 따라 걸었다.   가현치까지 가는 길은 얼마 되지 않았다.    가현치에 닿았을 때 산죽면 내려가는 간판이 보이면서

    닭똥 냄새가 진동을 하는 고개에서 정맥길은 시작되었다.

     

    산행준비를 하고 출발하였다. 

     

     

    산행은 늘 언제나 그러하듯이 호기심이 발동하여 궁금하건만 오늘은 달랐다.    이제 이 길을 걷는 날도 오늘이 마지막 쫑이 나

    는 날이기에 의미있는 길이기도 했다.      

     

     

     

     

    [알수 없는 흔적이여서 궁금했다.     시멘트로 삼각점처럼 사각으로 만들어져 빨간 깃발로 표시를 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런 곳을 몇 군데 보고서야  상봉에 올랐다.    느슨한 능선은 참나무의 잎들이 무성한 길위에 '상봉'의 표지기가 없다면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있는 봉우리였다.   

     

    '그래 첫봉우리여서 사진을 찍어야지'  

    '친구와 송아님'을 모델로 내가 찍었다.  ㅋ

     

     

    상봉을 지나면서 멀리 도덕산이 눈에 들어왔다.   

     

     

     

     

      상봉에서 얼마 되지 않아 헬기장이 있었다.

      넓은 헬기장였다.

     

     

     부산에 사는 '똥벼락'님의 표지기가 눈에 들어왔다.    반가웠다.

    똥벼락님은 백두대간 남한의 끝 '향로봉'올랐을 때(2005년 11월) 걸었던 그 길을 같이 걸었던 것을 후기를 보고 알았던 인연이

    있었다.

     

     

     

     

     

     

    [국사봉 정상]에는 나무 테크로 정상을 설치해 놓아 고산면과 저수지를 조망할 수 있는 봉우리였다.

     

    고삼저수지는 안성시 고삼면 월향리에 있는 저수지이다.    몽환적이고 서정적인 신비감을 간직한 천혜의 장소로 김기덕 감독의

    영화 《》의 주 무대로 푸른 물과 그 위에 떠있는 좌대의 풍경이 인상적이다라고 고삼저수지를 소개하고 있는데 사실 그럴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지도에서 보는 것 보다 훨씬 커 보였다.      우리가 버스를 타고 왔던 387번 지방도를 금방 알아 볼 수 있었다.    

     

     

     

     

     

     

    쌍령지맥을 진행하려고 지도를 꺼내 들기를 몇 번했지만 이러 저런 이유로 아직 가지 못한 저 길도 고삼 저수지 건너 알아 볼 수

    있었다.

    금병산  때문이다.

     

    국사봉에서 바라본 가까운 곳 물구덩이 꽃뫼지가 파란 삼각점 같아 보였다.

     

     

     

     

    '이 바위도 있어' 하는 선답자의 산행기를 보았다는 송아님의 말을 듣고 잘 오고 있구나 했다.

     

    바위 이름은 없고 그 길을 지나 비탈진길은 이어지고 길을 찾아 가는데 잘못 가고 있다는 걸 알았다.    보개산으로 가는 길

    였다.

     

    '맞다,   국사봉에서 좌틀해야 하는데.   산행 출발할 때 까지만 해도 주의해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만 국사봉에서 직진

    하고 말았다.

     

    잘못 가고 있는 길을 되돌아 나는 국수암 뒤 사면을 타고 돌고 돌았다.     송아님과 친구는 갔던 길을 되돌아 가 국사봉에서

    좌회전하여 왔든데 나는 험한 산을 헤집어 산을 탔고 둘이는 얌전한 산행으로 더 일찍 정맥에 복귀할 수 있었다.

    흙투성이와 잡풀로 나를 묻고 있었다.   에궁

     

     

     

    '저 바위를 알바바위로 해야겠어' 하는 바위이름도 지어 웃었다.

     

     

    철탑뒤로 보이는 국수암이 손톱만큼 멀리 들어왔다.

     

     

     

     

    [안성 허브마을 갈림길을 지나면서 나무토막 계단으로 이어지는 길을 걸어 갔다]

     

     

    턱골고개를 지나고 임도를 따라 가다 뒷산으로 오르는 길은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낮은 산이고 가까운 거리에 있어 쉽게 갈 수 있었다.

     

     

     

     

      뒷산였다.    △271.6봉였다. 

      삼각점이 많이 훼손되어 알아 볼수 없을 정도였고  하얀 철기둥이 세워져 있었다.

     

     

     빛바랜 연등이 휘날리는 대성사가 조망되는 뒷산을 내려와 정맥 산줄기로 복귀하여 걸었다.

     

    차가 오가는 차도가 있었고 길을 건너 길은 산으로 올랐다.   

    몇채 보이는 집앞으로 길은 이어졌고 그 길은 보삼로였다.

     

    우막이 있는 길은 좁은 산길였다.

     

     

    뜨락이란 식당앞에 오니 82번, 70번 국지도의 삼죽면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 걸었다.    

     

     

    삼죽면 노인복지회관 앞을 지나 삼죽면사무소로 가는 길였다.     

     

     

     

     

      사진에서 보는 거와 같이 삼죽로였고 앞에 보이는  헬스쳐진 옆이 123.6봉일 것 같아 우체국 갈림길과 버스정류장옆을

    지나 월곡부락 임도를 따라 걸었다.    산줄기를 오른쪽에 두고 대영비료 공장도 보이고 달골길을 마을을 지나고 임도에

    서 산으로 올랐다.     바로 정맥길과 만나면서 만남의 광장이 있는 38번 4차선도로로 내려 올 수 있었다.

    용인과 평택간 도로였다.

     

     

    도로에는 중앙분리대가 높이 설치되어 있었고 주유소 옆으로 산줄기가 보였지만 그 곳을 오르기엔 불가능했다.

    휴게소에 서 있는 분에게 물어 안성,평택쪽으로 도로따라 걷다가 삼죽면에서 올수 있는 쉬운 소로가 있는 것을 보고 두

    번째 온다면 이 고생은 하지 않을 것이란 것을 알았다.    산행지도에 그려놓은  보라색이 쉽게 건널수 있는 소로이다.

     

     

     '진촌 통로암거'란 간판을 지나면서 도로 아래로 건널 수 있었다.     

     

     

     

     

     

     

     

     

    진촌리 나촌동 논과 밭과 마을로 이어지는 도덕산 아래였다.     산줄기가 보이는 앞으로 진행..

     

     

    허름한 빈집앞에 앉았다.    지나온 산줄기 상봉과 국사봉이 저 멀리 조망되는 곳이었다. 

    점심을 먹고 사면을 치고 올랐다.     도덕산으로 가는 산줄기와 만나는 곳에 서니 훤한 길이 있었다.

     

     

    철탑을 지나고

     

     

     

     

      도덕산 정상에 섰다.

      안성에 사시는 대방님의 팻말이  나무에 걸려있다.     '높은 산은 아닌데 어쩜 이리 오기가 힘드노'  

     산정에 우리는 서 있었다. 

     시간은 오후 2시 19분였다.

     

     

     

     

     잡풀과 낙엽을 헤치어 삼각점을 찍었다.

     판독은 할 수 없었다.

     

    △366.4의 산정을 내려 가는 길은 낙엽으로 푹신한 길로 이어졌고 넓은 임도도 있었다.  

     

     

    이마에 닿아 쏟아지는 햇살은 따뜻했다.  

     

        

     

     

    [빈 나뭇가지 위로 조망되는 관해봉을 보면서 걷다 ]

     

     

     

     

    [골프장위 관해봉과 칠장산이 보이면서 어느 산봉우리보다 반가웠다]

     

    저 길을 걸어 이제 오늘도 끝이나는구나.   

     

     

    2개의 철탑을 지나고

     

     

     

     

     

    오른쪽으로 보이는 칠장산과 눈맞춤을 하면서 올랐다.   

     

     

     

     

     

     

     

     여지없이 대방님의 팻말이 걸린 관해봉의 눈도장을 찍고

     

     

     

     

     

     칠장산 마지막 봉우리에 섰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친구도 한 장 찍고 뒤돌아서 칠장산에서 내려다 볼 수 있었다.      골프장 두 개가 보이는 산정,

      강화 문수산에서 걸어온   190키로의 산줄기 끝은 칠장산였다.      한강 이남으로 형성된 13정맥중에 하나의 산줄기를 완

     성하는 순간이었다.

     

     

    송아님은 세번째 선다고 했다.    그렇다.    속리산에서 걸어왔던 한남금북 산줄기였고 안흥진에서 걸어왔던 금북정맥 산줄기였

    을 테이고 나와 친구는 난생처음였다.

     

    같이 철따라 꽃보며 가자던 상록수가 생각이 났다.

    어서 빨리 나와 같이 어느 산줄기를 갈수 있을까.   그길에 희망을 걸면서

     

     

     

     

      칠장선 정상석은 헬기장에 있었다.

     

     

     

     칠장산은 백두대간상의 속리산에서 서쪽으로 갈라진 한남금북정맥이 청주의 상당산, 음성의 보현산을 거쳐 칠장산에 이르러

    북쪽으로 갈라진 한남정맥은 양자산 검단산 등을 솟구친 후 김포 문수산까지 이어지고 칠장산에서 남쪽으로 갈라진 금북정맥

    은 오서산 팔봉산(서산) 등을 일으킨 후 서해에 가라 앉는다.

     

     

     

    송아님과 친구의 큰 소리가 헬기장에서 울려 퍼졌다.

     

     

     

     

     

      우리보다 반가운 마음이 더 했을 송아님 3정맥 분기점 앞에서 있다.

     

     

     

    칠장사로 내려간다.     

     

     

     

    [칠현산으로 가는 금북정맥의 산줄기와 작별하면서]  

     

     

    산죽밭 길따라 내려 간다.     ㅋㅋ하면서 혈압에 좋다는 산죽밭에서 시간을 보내고 한가로운 표정도 지어 가면서

    소녀같은 티를 내면서 칠장사로 내려갔다.

     

     

    지은지 얼마 안된다는 삼성각 아래 칠장산 혜소국사비앞에 나는 다가와 있었다.

     

     

     

     

     安城 七長寺 慧炤國師碑는 보물 488호이고

     

     문화재 소개를 옮겨보면

     

    혜소국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혜소국사는 고려 광종 23년(972)에 안성에서 출생하여, 10세에 출가하였으며 17세에 융천사(融天寺)에서 가르침을 받았다. 국사는 말년을 칠장사에서 보내면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한다. 현재 비는 비받침인 귀부(龜趺)와 비몸돌·머릿돌이 각각 따로 놓여 있는 상태이다. 흑대리석으로 만든 비몸돌의 양쪽 옆면에는 상하로 길게 두 마리의 용을 새겨 놓았는데 그 솜씨가 뛰어나다. 비문에는 대사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며, 글씨에서는 고려인다운 뛰어난 풍모가 느껴진다. 문종 14년(1060)에 세워진 이 비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대웅전] 경기도 유형문화제 제114호

     

      칠장사의 유래를 적어보면

     

      칠장사는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764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용주사의 말사이며 경기도 문화재

     자료 2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칠장사가 위치한 칠현산은 본래 아미산(峨嵋山)이었는데 고려시대 혜소국사께서 7도적을 교화하여 일곱 현인을 만들었다는

     연유로 칠현산(七賢山)으로 바꿔 부르고 칠장사(漆長寺)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대웅전의 주련을 한글로 적어 놓아 옮겨 본다.

     

     

     

    海底泥牛含月走 [해저니우함월주]   바다 밑의 진흙소는 달을 물고 달아나고
    巖前石虎抱兒眠 [암전석호포아면]   바위 앞의 돌호랑이 새끼 안고 졸고 있다.
    鐵蛇鑽入金剛眼 [철사찬입금강안]   쇠 뱀은 금강안을 뚫고 들어갔는데
    崑崙騎象鷺絲牽 [곤륜기상노사견]   곤륜산이 코끼리를 타고 해오라비가 끌고 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로는 원통전의 관세음보살과 우로는 보물 983호 봉업사 석불입상과 거북바위가 있다.

    대웅전 앞에는 죽림리 삼층석탑을 옮겨놓은 그 흔적을 알수 있었다.

     

     

    걱정을 사라지게 해주는 꺽정불과 명부전 외벽에 그려진 임꺽정과 그 무리들,  나한전의 혜소국사를 비롯한 일곱 나한이

    모셔져 있는 나한이 된 일곱 도둑 이야기, 어사 박문수, 장원급제의 대표적 인물로 손꼽히는 그가 사실 과거시험에 두 번

    이나 떨어진 삼수생이었단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삼수생 박문수가 장원급제한 까닭이 있는 칠장사다.

     

     

     

     

    [보물 제 1627호인 인목왕후 어필 칠언시]다.

     

     

    老牛用力已多年(노우용력이다년)  늙은 소는 힘을 쓴지 이미 여러 해

    領破皮穿只愛眠(영파피천지애면)  목이 찢기고
    가죽이 뚫려 다만 부처의 자비스런 눈뿐이로구나

    犁耙已休春雨足(려파이휴춘우족)  쟁기질과 써레질이 이미 끝나고 봄물은 넉넉한데

    主人何苦又加鞭(주인하고우가편)  주인은 어찌 심하게 또 채찍질인가?

     

     

      ㅁ이제는 기뻐해도 되지 않겠소

     

       조선 제14대 임금 선조의 두 번째 왕비였던 인목왕후 1602년, 겨우 18세의 나이로 무려 32세가 위인 50세의 선조와 결혼

    하여 결국 어린 나이로 왕후의 자리에 올랐다.     그로부터 4년 후인 1606년, 22세의 나이로 유일한 적자인 장남 영창대군

    을 낳아 선조가 붕어하고, 서출인 광해군의 즉위하자 터무니 없는 모략으로 인목왕후의 아버지 감제남과 8살 난 영창대군

    이 죽게 되었다.

     

    인목왕후는 크게 슬픔에 잠기어 칠장사에 아버지 김제남과 영창대군의 위패를 모시고 천도재를 크게 올렸다는 인목왕후

    어필 칠언시는 자신을 늙은 소로, 광해군을 채찍 든 주인으로 빗대어 표현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했으니 인목왕후와 영창

    대군을 다시 한번 공부하게 된다.

     

     

    위 제목이 '이제는 기뻐해도 되지 않겠소'하는 한 줄이 모든 것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아 나에게는 아주 먼 이야기이지만 슬

    픔이 된다.

     

     

    ○칠장사 문화재로는 국보 296호 오불회 괘불과 보물 1256호 삼불회 괘불로써 괘불은 큰 행사때 야외에

    걸어 놓는 큰 그림이라네요.

    야(野)(야외에) 단(壇)(단을 쌓아놓고) 법(法)(법회를 여는) 석(席)(자리)

     

     

     

     

    궁예가 활 연습을 한 활터를 지나 사천왕문을 지나 칠현산 칠장사의 일주문을 나와 걸으니 철당간이 하늘을 찌를듯 우뚝하

    다.

     

    천년의 고찰 칠장사를 내려선다.

     

    버스를 기다리려면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택시를 타자니 12,000원이라 하고 시간도 아직 서울로 가기엔 넉넉하고 하여

    차도를 따라 걷는다.

     

    마을이 보이면서 지나가는 고급승용차를 세우니 히치 성공!,   타고 보니 칠장사에서 장례식장 버스가 대기하고 있더만 그

    차가 조카가 20대 대학생이 사고로 죽어 이곳 칠장사에 안치하고 간다는 슬픈 일이 있는데도 우리를 태워준 고마움으로 죽

    산터미널에서 저녁을 먹고 헤어져 370번 버스를 타고 안성을 지나 평택으로 와서 전철로 귀가한다.

     

     

    칠장산에 왔을땐 기쁨.

    칠장사에서 느낀 슬픔은 배가 되고

     

    190키로의 산줄기가 산과 마을, 고속도로와 망친창이된 산길을 걸은 것으로 만족!

     

     

     

     

     

     

    출처 : 요물나라
    글쓴이 : 요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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