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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여수돌산종주] 돌산공원 - 소미산 - 대미산 - 수죽산 - 봉황산 - 금오산일반산행/돌산종주 2014. 1. 20. 09:57
[여수돌산종주] 돌산공원 - 소미산 - 대미산 - 수죽산 - 봉황산 - 금오산
2014년 1월 15일
칼용담, 가진, 능소화, 송아. 요물
도상거리 28km, 산행거리 30.46km
산행코스 : 돌산공원 - 백초마을 - x145봉 - 명성주유소 - 한려파크 - 굴전 - 소미산 - 대미산 ▲359.1 - 월암고개
- x183봉 - 계동고개 - x237- 본산 x273 - 작곡재 - x300 - x290 - 수죽산 - 봉양고개 - 갈미봉 - 임도삼거리
- 봉황산 - 율림치 - 금오산정상 - 임포마을
[산행지도]
겨울이 되면 남쪽나라로 가고 싶다. 작년 겨울에도 혼자 거제도 남북종주를 했던 그리움으로 따뜻한 산이 마음에 들어서이기도
하다. 동백꽃은 피었는지, 유채꽃이 피었는지 밭에 상추와 쪽파들이 즐비한 남해바다를 품어 안은 여수 돌산종주에 마루금을
긋고 있길 며칠이 지나 14일 오후 영등포에서 22시 53분 여수행 기차에 5명이 긴 여행길에 올랐다.
지리산을 갈때면 이 기차를 타는줄 알았는지 지리산이 아닌 여수 돌산종주와 거문도, 백도까지 산행과 유람선을 타고 여행하는 3
박 4일의 여정이었다.
기내에 우리좌석에 다른 손님이 앉아 있는 걸 보면서 아차하는 순간 발권을 하지 않아 잘못된 실수를 금방 알아채면서 처음부터
꼬이는 기분이 들었다. 전라도에 들어서면서 기내안은 텅텅비어 누워 잘 수 있는 여유도 있어 좋았다.
난 여수에 몇 번쯤 와 봤을까. 2006년 8월 여수항에서 배를 타고 더 가야 하는 개도와 금오도를 산행했던 곳이다. 그러고는
뻔질나게 여수를 드나들기도 했지만 향일암 뒷산 금오산만 올랐던 기억만이 있다. 내가 몸담고 있던 카페 여수지부가 그 때는
열성적이었기에 돌산종주도 그 열정으로 개척하여 길을 만들고 산행을 하면서 인터넷에 올려 오늘의 돌산종주가 있게된 것이다.
여수역으로 나오니 아직 불빛이 환하게 비추는 새벽 깜깜한 도시였다. 택시를 타고 기사님이 데려다준 해장국집에서 시래기,
콩나물, 뼈다귀 해장국을 시켰는데 맛이 없는지 쩝쩝대기만 하다가 그 집을 나온 것 같았다. 택시를 타고 돌산대교를 지나 공
원에 내렸다.
공원 가로등 아래서 산행준비를 마친후 긴 여정에 몸을 싣는다. 이름하여 여수돌산종주 30km ~~
여벌옷과 도시락 2끼분, 간식, 소지품이 들어있는 베낭무게가 무겁다는걸 알기에 천천히 진행하여야 겠다. 산이라는 것
보다 여수에 와 산에 간다는 기분으로 산에 들어야 겠다는 것도 내 마음속에 의미로 발걸음을 딛는다. 나보다는 친구와 같
이 한다는 것도 같이 말이다.
공원을 반바퀴쯤 돌아 나와 배촉마을까지 내려왔다. 조용한 마을에 쓰레기차가 정적을 깨우는듯 새벽을 여는 마을을
지나 우두교를 지나 산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돌산 산릉에서 바라본 여수의 도시가 아직도 어두움속에 잠들어 있었다. 하늘의 둥근달이 맞아 주는 돌산종주길, 별들도
총총, 바다 내음이 여기까지 스며든다. 콧등이 싸늘하지 않은 포근한 날씨이기에 기분이 좋다.
바다에 떠 있는 배는 어데로 가려는지 불빛이 휘영찬란하게 들어오는 산릉에 서서 걷는다.
[145봉의 삼각점]에 서니 큰 바위가 쉬어 가라는 듯 쉼을 한다. 산이라는 것이 참 묘한 기분이 든다. 이렇게 먼 길을 와
어두운 곳에서 한 길을 걷는 우리는 친구라는 이유로 산에도 같이 서 보고 여행도 한 배를 탈때가 있다. 그 때마다 친구가
좋다는 걸 ..
털석 주저앉는 친구를 보면서 오늘은 그냥 같이 걷는 것 만으로 가는데까지 가 보아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거기가 어데인줄 모르지만 ..
드디어 남해바다의 여명이 터오는 새벽, 붉게 변하는 바다, 바람부는 그곳으로 바람을 맞으며 삭막한 도시를 탈출했음
을, 자연의 아름다운 빛이 저 쪽에서 오고 있음이, 움추려 있던 날 깨우는 것 같다.
짙게 어둠이 깔린 여명에는 더욱 그렇다.
돌산종주 팻말이 산행 길을 알려 준다. 궂이 지도를 보지 않고도 갈 수 있게 안내를 해 주어 편한 길이 될듯 하다.
소미산과 대미산이 조망되는 우두리에 점점 밝아오는 여명을 보며 걷게 된다. 안굴전 마을과 남해바다 내치도가 손톱만큼
바다에 떠 있다.
곡선의 화려함을 가라앉힌 수평선이 밝아오고 있었다.
명성주유소를 지나 77번 국도를 따라 걷는다. 주유소 아저씨가 손짓을 하면서 우리를 부른다. '저리로 가라고'
'우째, 벌써 친구들은 저 멀리 가 있었고, 아저씨가 가르키는 곳은 이쯤인걸' 그냥 산릉으로 가는 것이 더 쉬운걸 알게 된다.
마상포마을 들머리였다.
안굴전 앞바다 내치도와 외치도, 그 남쪽으로 죽도와 혈서라는 섬!!!
가던 발길이 멈춘다. 저 찬란하게 빛나는 바다처럼 무심으로 살며 산으로 가자. 검은산 음영마저 산고를 이겨내며
떠오르는 저 해는 철썩이는 저 바다와 산이 온 힘인걸 ..
가다가 힘들면 차도를 걷고 걷다가 지루하면 산으로 들고 하면 되는걸 , 궂이 누가 그 길을 가고 그 산을 가고 지장대사
가는 길 차도를 걸어 올라보니 한려파크 건물이 있는 언덕, 앞서간 친구들이 아직 오지 않았네. 기다린다.
굴전리를 지나게 된다. 전라남도 기념물 제34호인 고니 도래지가 지금 이 해안에 서식하고 있는 곳이다.
약 50 -150마리의 고니가 해마다 규칙적으로 이곳 해안을 찾아와 월동하고 있는 곳이다. 고니는 늦가을에 찾아들어
이듬해 2월 말경이나 3월 초순경 북녘을 향해 떠날 때까지 이곳에 머물게 된다는 굴전 해안가에서 굴이 먹고 싶었지
만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그냥 돌아서고 말았다.
뭔 말을 주고 받는지 알수 없지만 굴전에 사시는 아저씨와 주고 받는 모습도 담아 보고 안굴전 마을로 올랐다.
뒷산 밭을 지나 절개지가 있어 양쪽으로 산행길을 찾아 올랐는데 절개지까지는 사람다닌 흔적이 있고 그 후부터는
길이 없어 소미산을 두고 방향에 마추어갔다. 가시덤불이 가득한 산이었다. 가는데 뒤 돌아보니 친구가 나를
찾고 덤불속을 오고 있지 못하다. 이름을 부르면서 소미산으로 올라 길을 찾아 가방을 놓고 보니 내 따라온 가시
덤불속에 송아님이 있고, '전 저쪽으로 간줄 았았어요!!"
청다래넝쿨이 줄줄이 엉킨속을 헤쳐나온 친구를 보니 안스럽다. '미안혀"
경상도 말로 "씨껍했지"
가시덤불을 올라온 산이 소미산였으니 힘든만큼 산이 좋아라 ,, 한 장씩 사진에 담았다.
가지고 있는 지도엔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여수시에서 안내판의 소미산에 대한 유래를 보면 이렇다.
대미산보다 작은산이라는 뜻에서 소미산小美山으로 부르게 되었다. 돌산도의 8대산 중의 하나이며 남쪽 무슬목을
사이에 두고 대미산과 마주보고 있으며 임진왜란시 전적지의 일부이다. 산 전체는 경사가 가파른 편이며 동쪽해안
일대는 암석해안이 발달해 있으며 산중턱에는 동백나무 군락지가 있다.
소미산에서 남해바다를 바라보노라면 큰섬이 내치도이고 작은 섬 죽도와 혈서가 조망되는 산이었다.
바다가 보인다. 정자가 있는 양지바른 따뜻한 잔디위에서 커피와 간식을 먹고 쉼을 하니 가시덤불을 타고 올랐던
산도 미울수가 없다.
떠나자.
동백나무숲을 지나내려 온다.
해양수산박물관 앞을 지나게 되는 차도가 무슬목이다.
무슬목이란 ?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평사리의 대미산(大美山)과 소미산(小美山) 사이에 모래가 쌓여 형성된 육계사주(陸繫沙洲)이다. 무술목(戊戌-)이나 무실목이라고도 한다.
무슬목은 우리말에서 물길에 모래가 쌓여 좁은 목을 이루고 있는 지형을 가리키던 말로 물이 빠지면 무릎까지도 물이 차지 않는다고 해서 한자로는 ‘무릎 슬(膝)’ 자를 써서 ‘무슬(無膝)’이라고 나타낸다. 원래는 가막만으로 바닷물이 흘러들어가는 물길이어서 밀물 때에는 물에 잠겼다가 썰물 때에만 사람이 걸어다닐 수 있도록 두 지역이 연결되는 지형이었으나 제방이 만들어지면서 육지화되었다. 길이 500m, 폭 200m에 이르며, 몽돌로 이루어진 해안선을 따라 여름에는 해수욕장으로도 이용되고 있다.무슬목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유인하여 왜선 60여 척과 왜군 300여 명을 섬멸한 전승지로 알려져 있다. 당시 무슬목 앞바다는 왜병들의 피로 물들어 ‘피내’라고 불렸다고 하며, 왜병을 섬멸시킨 해가 무술년(1598년)이어서 ‘무술목(戊戌-)’이라고 불린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곳을 ‘무서운 목’이라고 부르던 것이 세월이 지나면서 ‘무실목’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네이버 지식백과] 무슬목 [無膝-] (두산백과, 두산백과)
굴전마을 북쪽의 진모마을은 무슬목으로 이어지는 긴 목 모양의 지형 때문에 진목으로 불렸으나 참나무가 많은 우두리의 진목(眞
木) 마을과 구분되어 '진모'로 불려진다. 또 무슬목은 충무공의 전적지로 전해오는 곳이다. 정유재란 때인 1598년 지형적인 특성을
이용 왜군을 이곳으로 유인해 60여 척의 왜선과 300여 명의 왜군을 섬멸하였다고 전해온다.
여수갯가길의 상징은 거북이 모양이다. 그 이유는 여수에 섬과 바위 등 거북이를 닮은 12가지 형상이 있단다. 이순신 장군이 그 모습을 보고 거북선을 만들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무슬목삼거리를 지나 슈퍼에서 물을 보충하여 대미산으로 오른다.
돌산종주의 안내판이 있는 대미산 오르는 길목이다. 옛날에는 마을이었던 곳으로 짐작되는건 돌담이 있고 집터가
있었던 것 같은 언덕을 올라 넓은 길은 계속된다. 나무계단으로 이어져 있고 오르다 지쳐 쉬어갈 수 있는 의자가 있
어 대미산 오르는 길은 어렵지 않다.
경사가 심하여 대미산 사면을 돌아돌아 길을 내어 놓았다.
대미산을 거의 올랐을 때 굴도 있다. 호기심에 들여다 보는 송아님.
정자와 물이 나오는 식수도 있으나 꽁꽁얼어 붙어 있고 대미산의 유래가 써 있는 안내판도 있다.
대미산의 유래를 옮겨보면 이렇다.
대미산은 해발 359m로 돌산읍 평산리에 위치하며 원래 달음산이라 하였는데 산정식(山頂式) 산성이 있는 산을 뜻하는
'퇴미'에서 명칭이 유래되는 것으로 보인다.
'미'는 뫼의 고어로서 산을 의미하며 퇴미산이 대미산으로 음이 변하게 된 것이다. 서쪽에 있는 천마산과 함께 돌산
으로 들어오는 좁은 통로 역할을 하며 산 정상에 월암성터와 봉수대는 최근에 정비되었으며 임진왜란때 대미산에 왜군
이 일시 점령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월암산성으로 올랐다. 여수 돌산종주을 품어 않은 남해바다가 한눈에 들어 오는 굽이굽이 길이 제일 먼저 시야에
들어 왔다. 돌산대교를 건너 여기까지가 , 우두리 상하동 월전포 앞바다에 삼섬의 모양, 외치도 혈도. 내치도까지
남해바다에 풍경들에 새벽부터 걸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월암산성은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평사리 대미산에 있는 삼국시대 석축 산성지이다.
성은 대미산 정상으로부터 산의 7~8부 능선을 향하여 둥그렇게 쌓은 테뫼식[산정식(山頂式)] 산성이다. 성의 모양은 전체적으로 동고서저(東高西低)의 형태를 띤다. 성의 평면 형태는 각이 죽은 모양에 가깝고, 총 둘레는 249m이며, 너비는 상부가 3.2~4.1m이다. 성 안의 지형은 정상부에 약간의 평탄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서쪽은 동에서 서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내려간다.
성곽 관련 시설로는 문지 2개소가 확인되었으며, 성 안 시설물로는 서문지 안쪽의 건물지 1개소와 성의 동쪽 정상부에 추정 건물지 1개소가 있다. 동문으로부터 약 50m 떨어진 지점에는 지금도 우물이 남아 있으며, 성에서 남쪽으로 150m 정도 가면 봉수대의 흔적이 남아 있다. 유물은 토기류만 출토되었으며, 토기의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다. 외면 문양은 격자문, 선문 등이고, 색조는 회청색과 회흑색으로 나타나며, 모두 백제토기로 추정된다.월암산성지는 동문·서문·북문은 있으나 남문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축조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주변에서 발견된 토기류와 축조 방법으로 볼 때 백제시대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성은 구전과 1988년, 2000년에 실시된 현지 조사에 의해 임진왜란 때의 유적지로 추정되고 있다. 성의 남쪽 방면에 흔적이 남아 있는 봉수는 여수를 비롯한 남해-소흘산-순천부 성황당-광양현 건대산을 잇는 진례 봉수와 연결하는 사이 봉수[간봉(間烽)]로 기능하였다.
바람불어도 성이 막아준다. 금빛억새가 흔들리는 성안에서 점심을 먹는다. 배가 고픈지 라면을 끓이기도 전에 밥이 먼저
들어간다. 바람에 늦어진 라면이 꿀맛이다. 따뜻한 커피 한잔 먹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어라.
어데로 가야할까. 월암산성을 지나 가야하나. 월암산성보다 높은 △359.1봉이 대미산였다. 그래서 대미산을 찾아 떠난
다.
월암산성으로 올라왔던 길을 지나 산릉을 따라 걷게 된다.
[대미산 정상]에 돌로 쌓여 있는 곳이다.
[대미산 삼각점이 돌이 쌓여 있는 꼭대기에]
돌산종주는 대미산으로 내려와 이정목에 쓰여진 월암으로 내려가게 된다. 대미산을 올라온 만큼 내려가야 하는 고도를
낮추며 산릉을 걷는다.
금빛 출렁이는 억새가 하늘빛에 발하고 있는 산을 간다. 내려오는 길에서 더욱 무릎이 아파 온다는 친구가 걱정된다.
기다리며 앉아있길 반복되면서 발걸음도 멈춰진다.
고인돌이 있는 월암고개였다. 힘들어하는 친구를 멀리서 보며 또 쳐다보며 갈수 있는데까지 가 보기로 한다.
밥도 못먹었다는데 기운이 있을까 걱정도 되고. 또 한 친구는 그럭저럭 묵묵히 간다.
그래도 월암고개에서 용기를 낸다. 산 봉우리 하나를 넘으니 또 차도가 있는 계동고개다. 계동고개를 둔전고래라
고도 부른다. 차도를 건너 늦어지는 친구를 기다린다. 작곡재까지 가려 해도 봉우리를 3개나 넘어야 하기에 이곳에
서 더는 못가겠다는 친구의 얼굴을 보니 그럴것 같다.
더는 가보자는 말도 못하겠다 싶어 또 한 친구가 같이 동행하여 숙소까지 간다니 맘이 놓인다. 베낭에 있던 옷가지와
소지품을 덜어 친구에게 주고 향일암에서 만날 것을 약속하며 떠난다.
[월암고개에서 바라본 봉우리와 세번째 봉우리가 본산, 그리고 시설물이 있는 작곡재까지]
작곡재까지 가자던 약속도 허물어지고 마음이 편치 않다. 나머지 우리 셋이 길을 간다. 산으로 오른다.
돌무덤이 있는 곳이 237봉이고 234봉을 지나니 본산 △275.9였다.
석축이 반만 쌓아 있는 본산의 이야기를 읽어본다. 많이 파괴되어 있는 본산성에 삼각점이 있다. 한 개는 68년도이고
한 개는 2002년에 설치된 것으로 보아 재설하고 68년도 삼각점은 폐쇄하지 않은 것 같은데..
작곡재로 내려오니 집 한채가 있는 차도였다. 17번 도로는 계속 이어져 돌산대교에서 향일암으로 오가는 버스도 이곳을
지난다.
수죽산으로 오른다.
수죽산의 유래를 보면
수죽산(水竹山)은 '여산지'에 의하면 두 도랑물이 굽이 굽이 돌면서 합쳐지고 푸른 대밭이 쭉 깔려 있다고 하여 붙혀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산의 좌우에는 봉수치와 작곡재가 있으며 와룡천의 발원지로 이 산에서 발원한 와룡천은 북쪽으로 흐르다 둔전들과 무슬
목을 지나 여수만으로 유입된다. 산정상 주위에는 수죽산성이 남아 있다.
수죽산은 푸르다. 아름드리 측백나무가 가득하고.
대나무밭이 가득하다. 이 밭은 대밭였는데 길을 개척할 시 낫으로 대나무를 자르고 하여 만든 길이다.
그 때 작업하면서 잘못하여 다친 회원님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등의 열정적였으니 우리는 편히 이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수죽산 정상에 선다.
수죽산을 알리는 곳이 두 군데 있기도 하다.
[봉화산 정상에 섰다]
봉화산에 서면서 힘들어하는 친구의 발걸음이 자꾸 느려진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 갈 수 있다는 희망도 같게 된다.
봉양마을이 있는 봉양고개로 오니 시간도 많이 지났다. 오후 5시.
측백나무가 즐비한 길을 올라
율전저수지가 조망되는 너른 잔디밭이 있는 임도를 지나 갈미봉으로 오른다.
발걸음은 느려지고 오르막은 저녁을 재촉하며 걷는다.
[갈미봉 정상]에 서게 된다.
가지고 있는 지도에는 갈미봉의 표기가 되어 있지 않은 산이었다.
시간은 자꾸 가기에, 어두움이 오기전에 송아님은 저녁을 먹자고 한다.
임도삼거리에서 차린 저녁상은 각자의 밥과 밑반찬, 송아님이 가져온 야채소스가 전부였지만 꿀꺽 꿀꺽 넘긴다.
출발할때 어두운 새벽이었는데 또 하루가 가는 어두움이 온다.
봉황산 오르는 길에 발걸음이 무거운지 진행이 느려진다. 그래도 묵묵히 가고 있는 친구가 제일 힘들꺼란 생각에
길만을 걸어간다.
종주라는 것, 대전 보만식계, 지리산 태극종주, 영남 알프스와 호남 알프스. 거제도 남북종주와 동서종주 등등 우리
나라의 종주길 중 제일 쉬운 길이 여수 돌산종주였다.
가는 곳마다 현위치를 알려주고 정상마다 이름표를 달고 있는 이곳이다.
죽포정상과 향일암가는 이정목을 지나 봉황산 전망대가 있었다. 이미 깜깜해진 전망대에 서니 둥근 보름달과 별빛 하늘이
내려다 보고 있는 듯하다. 봉황산 정상 △460.3, 돌산종주중 최고봉였다.
[봉황산의 유래를 담아] 봉황산을 떠나 향일암으로 가는 길로 가게 된다. 드디어 향일암이라는 종착역을 말해 주는 듯
하더이다.
길은 넓어 걷기에 편하다. 내려오는 길은 계속 그렇게 넓다.
바람한 점 없는 남해바다를 가르는 산이 포근하다. 산길을 걸어서 내려오게 되고 임도도 지나고 초소도 지난다.
'갈수 있어'하는 말도 잊은 채 율림치 주차장에 불빛이 비추어 오면서 반가운 마음이 든다.
누군가가 기다릴 것 같은 율림치 주차장에서 자판기 커피 한 잔씩 마시고 마지막 금오산으로 오른다.
금오산 오르는 길
가다 서길 몇 번에 정상에 섰다.
▲323봉의 금오산 정상에 어느 봉우리보다 잘생겨 보이는 정상석에 한 사람씩 서서 사진을 찍었다.
송아님은 며칠 전 호남정맥길에 갔다와 30키로를 걸었으니 장하고 내 친구는 처음으로 종주라는 산길에서 마지막 금오산
에 섰으니 장하다.
여기까지 걸어온 여수 돌산길은 어땠는지 궁금하네.
나는야!!
[금오산 삼각점]을 찍고 바삐 내려간다.
이제부터 빠른 걸음으로 내가 앞에서서 길을 재촉한다. 앞서 가다 서길 반복하며 향일암 뒷산인 봉우리 한 개를 남겨
놓고 나는 거기까지 갈 것인가 고민하며 내려선다.
임포마을 주차장가는 갈림길에서 친구에게 묻는다. 더 가고 싶냐고, 임포마을로 내려가고 싶냐고.
그 답은 후자였다.
임포마을 내려가는 길 향일암은 새로 단장되어 입장료를 받는 곳으로 바뀌어 있고 친구를 따라 여관으로 찾아간다.
밤 10시. 여관에 여장을 푼다.
머리좋은 년이 얼굴 이쁜 년한테 못 당하고
얼굴 이쁜 년이 시집 잘 간 년한테 못 당하고
시집 잘 간 년이 자식 잘 된 년한테 못 당하고
자식 잘된 년이 건강한 년한테 못 당한데더라
건강이 젤이라구요!!
새벽 5시 부터 걸어 밤 10시 여수 돌산종주는 여기서 끝이었다. 17시간을 걸었다. 허리가 뻐근하다.
따뜻한 방바닥에 누우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어라.
출처 : 요물나라글쓴이 : 요물 원글보기메모 :'일반산행 > 돌산종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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