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해인사 산내, 산외 암자
    불교/해인사 산내, 산외 암자 2022. 4. 13. 00:15

    일     시 : 2022년 4월 10 일요일 맑음  순례하기 좋은날

    누 구 랑 : 오대장  송아

    2편은 해인사부터  기록

                        

    해인사 신라 의상대사의 법손인  순응順應, 이정利貞 두 스님이  신라 제40대 애장왕3년 (802) 10월 16일

    왕과 왕후의 도움으로 창건

     

    해인사 창건의 참뜻은  해인海印 이라는 말에 응집되어 있다.    행이이라는 말은 화엄경의  화엄경의 

    해인삼매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인삼매에는 일심법계의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곧 있는 그대로의 진실된 제혜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 객관적인 사상의  바로 영원한  진리의 세계다.

    해인삼매는 또한 오염됨이 없는 청정무구한 우리의  본디 마음을 나타내는 말이며  우리의 마음이

    명견지수의  경지에 이르러 맑고 투명해서  있는 그대로의 세계가  그대로 비치는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러한 모습은 한없이 깊고 넓으며  아무런 걸림없는 바다에 비유되어 거친파도  곧 우리들  마음의

    번뇌망상이 비로소 멈출때  우주의 갖가지 참된 모습이 그대로 물속에 비치는 경지를 해인삼매라 하였다.

    이러한 여실한 세계가  부처님의 깨달음의 모습이요 중생의 본 모습이니  이것이 곧 해인삼매의  기르침인

    것이다. 

    사적 제504호다.                  

              언덕 올라와 왼쪽   이곳으로 통행을 많이 한다. 가운데 종각이 보인다.

     사시 예불 모시기 전 사물을 치기 위해   사미스님들이 종루에

      범종루 앞 마당에 법계도 둘레에 소원지를 달아놓었다.

    석등은 부처님이 계신 사찰에 어둠을 밝히기 위해 만든 것이다.  부처님에 대한 등 (燈) 공양과 

    관계된 것이므로  부처님을 상징하는 탑과 함께 젖당앞에 설치된다. 이 석등 역시 원래 석탑

    앞에 있었지만 현재 위치로 옮겨 놓았다.  옮겨진 이유와 시기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석등은 받치돌과 기둥들, 등불을 놓은 화사석, 지붕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둥돌의 원래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전체의 크기는 알 수 없다. 맨 아래 네모난 받침대에는 코끼리 눈 모양의

    무늬를 새겨 넣었으며, 8각형의 아래 위 받침대에는 8장의 연꽃잎을 각각 땅과 하늘을 향하도록

    새겨 넣었다.  화사석에는 4개의 창을 두었는데 창 사이의 모서리의 4면에 각각 사천왕상을 

    돋을 새김한 것이 이채롭다. 지붕돌은 역시 8각으로처리하여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었으며

    맨 위에는 둥근 구슬을 올렸다. 새겨진 눈 모양과 연꽃무늬의 우아한 조각 수법 그리고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시대의 석등으로 알 수 있다. 

      법당에서 사시예불 마치고 나오시는 스님 모습도  보인다.

    부처님을 따랐던 수많은 제자와 중생들에게 한 설법과 교화 내용은 생전에는 문자로 기록되지 못했다. 

    80생애를 마치고 열반에 드신 후 제자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으로 남겨야 할 절실한 팔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그리하여 만들기 시작한 최초의 기록이 폐엽경貝葉경이다.

    폐엽경이란 최초의 불교 결집에서 만들어진 결집 경전 結集경展으로 패다라貝多羅  송곳이나 칼끝으로

    글자르 세긴 뒤 먹물울 먹여 만들었다. 

     

    이후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하여 녈리 반포할 목적으로 간행한 기록을 모두 대장경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대장경을  일체경,삼장경 또는 장경 등으로 부르기도 하며 경장, 논장, 율장의 삼장으로 구성된다.

    삼장은 인도의 고대 언어란 산스크리스트(범어梵語) 혹은 빨리어로 원뜨리어배타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법보전 부처님

                            학사대 전나무

    법보종찰 해인사는 불보사찰 통도사,  승보사찰 송광사와 더불어 한국의 삼대 사찰로 꼽힌다. 해인사는

    한국 화업종의 근본도량이자 우리 민족 믿음의 총화인 팔만대장경을 모신 사찰이다. 

    해인사는 신라시대에 화엄종의 정신적인 기반을 확충하고 ㅛㅓㄴ양한다는 기치 아래, 이른바 화엄십찰

    의 하나로 세워진 가람이다. 화엄종의 근본 경전인 화엄경은 4세기 무렵 중앙아시아에서 성립된 대승경전의

    최고봉으로서, 본래 이 이름은 대방광불화엄경이며 동양문화의 정수 라고 알컬어진다. 이 경전에 해안삼매

    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해인사 이름은 바로 이"해인삼매"에서  비롯되었다. 해인삼매에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한없이 깊고 넓은 튼 바다에 바유하여,거친파도 곧 중생의 번뇌 망상이 비로소 멈출 때 우주의

    갖가지 참된 모습이 그대로 물속에海  비치는印경지를 말한다.  이렇게 여실한 세계가 바로 부처 깨달음의

    모습이요 우리 중생의 본래 모습이니,  이것이 해인삼매의  가르침이다. 아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해인사는 해인사는 해동 화엄종의 초조  의상대사의 법손인 순응화상과  그 제자인 이정 화상이 신라 제40대 

    임금 애장왕 3년 곧,  서기 802년 10월 16일에 왕과 왕후의 도움으로 지금의 대적광전 자리에 창건

    이리하여 화엄종은 개화기를 맞던 신라시대를 거쳐 해인사를 중심으로 희랑대사를 위시하여 균, 의천과

    같은 빼어난 학승들을 배출하기에 이른다. 해인사는 한국 불교의 성지이며 또한 세계문화 유산 해인사

    장경판전 및 세계기록유신인 팔만대장경을 비롯해 반야사 원경왕사비. 건칠목조희랑대사상. 영상회랑도.

    청량사 석조여래좌상과 삼층석탑 등 국보, 보물, 70여점이 았느며,  광해군 내외 및 상궁 옷이 중요한

    민속자료로 보관되어 내려오고 있다. 

     김영환 장군 팔만대장경 수호 공적비

    약수암 : 비구니 수행처 구한말1914년 비구니 성주스님이 창건   1927년 도상스님이 중건 

                가까이에 해봉스님의 부도 도상스님의 부도 있음.

                   

      국일암 : 창건연대 미상 부휴대사의 문화인 벽암 각성대사가 오래 거주 하면서 인조 15년 1637년 중건

                 하였다고 전한다.  벽암스님은 글씨에 군법에 능통한 스님.  조선 인조때 남한산성을 축성한

                 공적으로  인조임금으로부터 원조 국일선사라는 서호를 받았다. 국일암은 이 이름에서

                 비롯되었으며 그 뒤에 정인스님이 해방전후에 두 차례 걸쳐 중건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에 부휴스님  고환스님 벽암스님 부도가 모셔져 있다.  

                                      금낭화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