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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산내, 산외 암자 (산내14, 산외4)불교/해인사 산내, 산외 암자 2022. 4. 12. 07:50
일 시 : 2022년 4월 10일 일요일 맑음
누 구 랑 : 오대장 신광일 신광일 지인 닐리리 송아
거 리 : 11.53㎞ 7시간7분
코 스 : 산외암자 : 청량사, 고운사, 고불암 중암
산내암자 : 금강암(금강굴) 보현암 삼선암 금선암 원당암 홍제암 용탑암(용탑선원)
해인사 약수암 국일암 지족암 희랑대 백련암 길상암
※9일 토요일 오후 6시 10분 남부터미널 - 거창 고속버스 이동 (3시간30분)
닐리리님 학원 1박하고 새벽4시기상 5시 거창에서 해인사 출발 가는 길목이라 해서 청량사부터
순례시작. 고운사 중암 고불암까지 승용차 순례하고 해인사 성보박물관 주차장에서 산내암자
시작. 닐리리님 시광일님과 지인은 해인사 들러 황매산으로, 산내암자는 오대장님과 송아 순례
청량사淸凉寺 : 신라말의 학자인 고운최치원이 이곳에서 놀았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있는 것으로 보아 신라때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1811년 회은스님이 중수하고 최근에 경암스님이 중건. 신라때 고찰 보물을 많이 간직
통일신라 시대의 양식으로 보이는 석조석가여래좌상石造釋迦如來坐像)(보물265호)과
보물 제266호로 지정된 삼층석탑三層石塔과 보물 253호로 지정된 석등石燈들은 천년
고찰의 향기를 전한다. 055-932-7987
보물 제266호 삼층삭탑
종루위에 용으로 장식
보물 265호 석조석가여래좌상
차 안에서 가로수 벚꽃은 찍었는데 유리문 센팅으로 흐리다
고운암孤雲庵: 고운 최치원 선생이 살던 초막. 1974년 새로 법당을 직고 선생의 호를 따서 고운암이라 명명
고불암 : 해발 900미터에 법당위치 부지 1만평 건평725평 2003년 7월 토목공사 기초 착공하여
2004년 3월부터 공사 10월 준공 해인사에 기부하여 해인사 재산으로 등록
전총사찰식 목조건물과 현대식 건축물 함께 조화 이루고 있다.
전통사찰목조건물 : 육화당 벽안당 고불루
육화당 : 주지실 접견실 사용, 벽안당 : 스님요사채
현대식건물 : 반야당, 용선당 반야당 : 1층 종무소 2층은 스님들 참선방
용선당 ; 1층 공양간 2층은 신도들 숙소사용 055-934-0127
납골당
청동 동조좌상: 고려 후기에 청동으로 조성된 불교조각상으로 , 경남지역에서 조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의
사례다. 보관이 결실된 상태이지만 고려후기의 자비로운 미소를 띤 상호라든가 화려한
영락 장식등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유물
보살상의 크기는 전고全高 74㎝, 두고頭高21㎝, 미폭眉幅28㎝, 구폭胊幅20㎝,
슬폭膝幅53㎝, 슬고膝高13㎝이다.
고불산방
산내암자의 길로
금강암(금강굴)金剛庵 : 1976년 창건 . 비구니스님들의 수행처. 보현암과 나란히 있다.
원래 이곳의 지명은 오가리五佳里 5가지 아름다움 : 천룡, 백호, 전망, 문수보살의 정진과
보현보살의 교화 이 다석가지가 아름다운 것이라는 것
보현사普賢庵:1973년 혜춘스님이 세운 비구니 수행처. 전망이 탁트여 가야산과 홍류동 계곡이 한눈에
글어오는 절승지
내 소리를 들었는지 먹이 줄까봐 모여든다.
삼선암三仙庵 : 1893년 자홍스님이 창건1904년 보찬스님과 지종스님 두 분이 중건
가까이에 문오스님 부도 있다. 비구니 선원
약사전
머위꽃
금선암 : 1945년 하담스님이 창건. 비구니수도처 큰절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암자
수선화
홍제교
원당암 : 신라 왕실의 원찰로 세운 큰 절이었다.대덕광전과 마주보이는 비봉산 중턱에 자리 그래서 본디
봉서사라고 했다. 본찰인 해인사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조선 세조임금때 학조대사가 오랫동안 주석 철종3년 1852년 우룡스님이 중수 고종11년 1874년
비구니 성수스님이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근대에 해운스님과 혜암스님이 도량의 면모를 일신하였다. 보물 제518호점판석 다층탑과 석등
그리고 안상을 넣은 금당의축대석 등은 중요한 사적
혜암스님 : 30년 장좌불와 대한불교조게종 제10대 종정. 원당암 미소굴에서 좌탈입적(좌탈입망)
055- 932-7308
심검당
봉황이 알을 품은 자리에 달마선원
봉황의 머리부분
정정: 해 - 혜
홍제암弘濟庵 : 해인사 서편 일주문에서 200미터 떨어진곳 위치. 사명대사가 입적한 곳으로 유명. 임진왜란이
끝난 뒤 이곳에 은거하던 사명대사는 광해군 2년에 속세나이 67세에 입적. 광해군은 스님의
열반을 애도하여 "자통홍제존자(慈統弘濟尊者)" 라는 익호를 내리고 이곳에 스님의 비를 세웠다.
그뒤부터 스님의 익호를 따라 이 암자를 홍제암 이라 하였다.
사명대사의 비문은 홍길동전으로 더 잘 알려진 허균이 지은 것으로서 ,문장도 아주 빼어날 뿐더러 대사의 행장이
비교적 소상하게 적혀있어 사적으로서의 가치가 높다.
지금의 홍제암 건물은 최근에 신축한 것이며 청허, 사명, 기허 대사를 비롯한 뭇 큰 스님들의 영정을 모신
영자전이 있다. 보물 제[1301호 사명대사의 부도 및 석장비가 있다.
보승문
ㅏㅂ 홍제암 부도탑군
사명대사탑 1943년에 일본인이 깨뜨린 것을 1958년에 복원한 것이다.
사명대사 부도 홍제암 뒤에 모셔져 있다.
용탑암(용탑선원):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중 한 분리셨던 용성스님을 위하여 창건된 이 암자는 스님의
사리탑을 수호 관리하기 위하여 1945년 창건되었으며 용탑전龍塔展이라 불리기도 한다.
055- 932-7206
용탑선원 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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