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중앙박물관에 가면 꼭 가보는 두 곳이다. 마치 옷을 다 벗으신 듯, 겉치레를 다 떨쳐 내버린 듯, 앙상한 속살을 드러내고 계시지만, 당당하고 자유로운 마음을 느끼게 하는 불교조각실의 거대한 철불인 비로자나 부처님과, 앞에 서기만 해도 경외감을 느낄 수 있는 미륵반가사유상이다.

하지만 마음이 늘 편치 못한 두 곳 이기도 하다. 반가사유상은 독립된 공간에 조명 및 높이 등을 잘 고려하여 비교적 잘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좁고 두꺼운 유리 안의 성상은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하고 본래의 역할을 하는 게 맞는지 아쉽기도 하다. 치우친 아름다움만을 찾는 사람들의 눈에는 더욱 탐미적 감상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실도 안타깝다.

철불 부처님들은 또 어떤가? 철불은 거치른 1차 주물 형태에서 석고를 바르고, 삼베를 두르고, 옻칠을 하는 등의 과정과 성상으로서의 복장과 점안을 거쳐, 예배의 대상으로 재탄생한다. 때문에 주물 자체로는 다음 마감재를 위해서 더 투박할 수밖에 없다.

 

거대한 불상은 규모에 맞는 법당의 크기와 높이에 모셔져야 한다. 예배자가 무릎 꿇고 합장한 채, 부처님을 향하여 고개를 들고 올려다 보는 중생의 눈과, 자비심으로 중생을 바라보는 부처님의 눈이 서로 마주칠 수 있는 높이와 각도로 모셔져야 불상 본래의 역할과 격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이럴 때 마음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던 한갖 무정물의 불상이 한없는 자비와 지혜를 쏟아 내는 살아있는 부처님으로 탄생한다. 이런 조건 속에 부처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중생의 아픔과 고뇌가 해결되기도 하는 것이다.

 

국보 제7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사진 왼쪽)과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특히 한국 불상은 예배자의 입장에 따라서 어떤 때는 자비한 듯, 어떤 때는 화를 내시는 듯, 천변만화의 얼굴을 나타낸다. 이것은 사람마다의 처지에 따라 각각의 상처를 치유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오묘한 불상은 흑과 백으로, 내편과 네편을 나누는 이분법적 풍토 속에서는 나올 수 없는 일이다.

 

있음과 없음이 둘이 아니고, 옳고 그름을 하나로 세우지 않으며, 과거와 미래를 넘나 들고, 너와 나를 아우르는 높은 정신세계의 불교적 토양 속에 한국불상이 있다. 끝없는 소유욕과 무한경쟁으로 병들어 가는 현대인들에게 이런 정신세계는 삶의 진정한 안식처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의 한국불상은 물질의 차원을 넘어 예배의 대상과 치유의 대상이다.

 

세계인에게 이런 정신적 안목은 전해주지 못할망정, 민중의 아픔과 고난을 함께 하면서 석고를 포함한 모든 마감재가 다 떨어져, 뼈대만 남은 철불을 보고는, 제작 기법이 거칠다는 둥, 거대한 불상을 거의 땅바닥 수준의 높이에서 바라보면서 비례가 맞지 않아 수준이 떨어진다는 등의 상식이 결여된 배치와 전시 안목에 우려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소중한 문화유산의 보존과 계승을 위해 높은 이해와 기술적 지원을 하는 전문가들의 소견은 우리문화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미칠 큰 영향을 고려해 봤을 때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성상을 단지 문화재 차원으로만 바라보는 관계자들의 안목을 못 미더워하고 있는 마당에, 이번에 또다시 국민들과 불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불자들은 숭앙의 대상인 불상들이 78호, 83호 등의 숫자로 불려지는 것도 마음이 언짢은 일인데,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선택한다면서 83호 보다 78호는 덜 중요한 듯, 대안이라고 제시하는 여론몰이에 분통이 터진다.

 

국립 중앙박물관은 더 이상 미륵반가사유상의 해외반출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벨기에 전시로 더 이상 해외전시를 하지 않겠다던 약속을 지켜야 한다. 그 때도 우리나라의 대표 중의 대표 격인 미륵불상이 해외에 너무 자주, 오랜기간 반출되는 일에 대해 많은 국민들의 비난여론이 들끓었었는데, 그런 일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또 다시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가며 이해득실에 따라 우리의 정신문화를 저울질하는 행태는 우리의 국격을 높이기는 커녕 추락시키는 일이다.

 

더군다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관계자가 우리의 미륵부처님에 감탄하고는 반드시 미국에 전시하고 싶다는 뜻을 피력한 것이 계기가 된 모양인데, 박물관의 입장도 중요하겠지만 국민들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바란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세계적 박물관일지라도 우리 불상의 본래적 의미보다는 여전히 동양의 신비적 아름다움을 얘깃거리로 삼으면서, 자칫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번호로 불러서 죄송한 78호, 83호 부처님을 정말 우리가 귀하게 생각해야 남들도 우리의 문화재를 귀하게 생각한다. 오히려 우리의 문화재를 우리나라로 그들이 보러 오도록 유도해야 맞을 것이다. 우리도 가끔 외국의 유명한 문화재를 보기위해 일부러 그곳에 찾아 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 문화재가 그곳에 없다면 그 황망함이 어떠하겠는가! 다른 나라들도 그들의 중요한 문화재는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오히려 수준 높은 공식 복제품을 내보낸다고 한다. 만약 작은 손상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할 것인가?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 우리의 미륵부처님들을 더 이상 해외로 반출하지 않기를 바란다.

 

엊그제가 초파일이었다. 이제 예배의 대상인 부처님들이 박물관에서 제대로 모셔지지 못한다면, 본래 자리였던 사찰로 다시 모시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 국민들과 불자들의 정서는 뒷전으로 밀어내고 국립박물관의 이해타산에 따라 더 이상 미륵부처님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불교신문 주간 일감 두손 모아 합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