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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00404 보 길 도섬산행 2013. 1. 4. 17:51
다도해해상 국립공원의 섬 가운데 하나인 보길도는 봄의 화신이 육지보다 빨리 찾아드는 곳이다. 특히 이 섬의 최고봉인 격자봉(格子峰·430m)은 이른 봄부터 동백꽃으로 붉은 몸살을 앓는다. 보길도는 완도 남서쪽 32km 해상에 위치한 동서 12km, 남북 8km의 아담한 섬으로, 온대상록수림이 섬 전체를 융단처럼 감싸 이색적인 분위기가 짙은 곳이다.
보길도는 섬 중앙에 대형 운동장을 연상케 하는 분지가 형성돼 있고, 분지 한가운데에 부용리 주민들의 식수원인 수원지가 자리하고 있다. 격자봉은 이 분지 남쪽에 솟아 있다. 이 산은 멀리서 바라보면 산세가 부드럽고 완만해 특징이 없는 듯 보인다. 하지만 주능선에 들어서면 뿔처럼 돋은 기암들이 나타나며 탐방객을 놀라게 한다.
주능선과 정상에 올라 보는 조망은 섬산 특유의 시원스러움과 함께 아기자기함도 갖췄다. 정상에서 북으로는 분지를 이룬 부용리와 동천석실, 승룡대, 석전대 등 윤선도의 유적들이 샅샅이 내려다보이고, 바다 건너 멀리로는 해남 땅끝과 달마산이 가물거린다.
고산 윤선도(1587-1671)는 보길도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할 인물이다. 고산은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8세 때 큰집에 양자로 가게 되어 해남윤씨 집안 대종을 잇는다. 그는 30세 되던 해 이이첨 일파에 대한 탄핵으로 함경도 경원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고, 이 때부터 유배와 은둔으로 이어지는 일생을 보낸다.
그는 1637년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통분하여 세상을 등지기로 결심하고 제주도로 향했다. 하지만 그는 중간에 머문 보길도의 수려한 풍광에 매료되어 이곳에 정착하기로 하고 부용동 정원을 꾸미기 시작했다. 고산은 자연을 노래한 많은 작품을 창작했고, 풍수지리, 천문, 음악 등에도 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85세에 이곳 보길도에서 생을 마감했다.
보길도 청별나루에서 도보로 15분쯤 가면 고산의 기예가 흠씬 배어있는 세연정(洗然亭·사적 제368호)이 모습을 드러낸다. 세연정 일대는 우리나라 조경 유적 가운데 몇 손가락 안에 꼽는 독특함을 자랑하는 곳이다. 개울에 보(일명 굴뚝다리)를 막아 논에 물을 대는 원리로 조성된 세연지에서 고산의 대표작 어부사시사가 창작되었다.
보길 대교는 교량 길이 620m와 접속도로 1.4km로, 전체 사업비 539억 원이 투입돼 8년간의 공사 끝에 완공됐습니다.
보길 대교 개통으로 천혜의 자연경관과 고산 윤선도 유적지 등을 찾는 탐방객과 섬 주민들의 교통 편익이 증진되고 해상 교통의 불편이 해소됐습니다.
특히 완도에는 지난 1968년 완도대교를
전남 완도군 노화도와 보길도를 잇는 연도교인 '보길 대교'가 개통됐습니다.
보길 대교는 교량 길이 620m와 접속도로 1.4km로, 전체 사업비 539억 원이 투입돼 8년간의 공사 끝에 완공됐습니다.
보길 대교 개통으로 천혜의 자연경관과 고산 윤선도 유적지 등을 찾는 탐방객과 섬 주민들의 교통 편익이 증진되고 해상 교통의 불편이 해소됐습니다.
특히 완도에는 지난 1968년 완도대교를 시작으로 약산대교, 신지대교, 소랑대교, 고금대교에 이어 이번 보길대교까지 여섯 번째 연륙·연도교가 건설됐으며, 조만간 노화~소안도 연도교와 약산~금일~금당~고흥간 연륙·연도교 사업도 추진될 예정이어서 12개 섬이 하나로 연결되는 명소로 자리잡을 전망입니다.
과업구간: 노화읍 이포리~보길면 부황리
세연정 고산 윤선도가 어부사시사를 지었던 곳. 고산은 세상을 떠나 은둔하고자 제주도로 가던 중 보길도의 풍광에 반해 머물게 되었다. 윤선도는 부용동에 인공호수와 정자를 지어놓고 시와 술로 세월을 보냈다고 하는데, 그곳이 바로 세연정이다. 개울을 보로 막아 물을 모았고 세연지와 회수담 중심에 정자를 세워 사면에 편액을 달았다. 1638년(52세)에 만든 우리나라 민간 정원으로는 가장 크며, 조경문화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보여준다.
보길초등학교
물길을 가로지르는 둑길이 굴뚝이라구 허네요 !
요즈음 건축사도 생각하기 어려운 발상이 아닐까요 ~ ?
"일명굴뚝다리"
산행을 마치구 . . .
노화도 선착장
그 밖에 보길도에서 산행을 빼구 꼬~옥 보아야 할 곳
우암 송시열의 '글씐바위' 보길도의 동쪽 끝 해변에 있으며 남쪽으로 넓게 펼쳐진 바다가 수평선으로 이어져 있다. 20~30m의 해안 절벽이 약 300m까지 이어져 있으며, 절벽 위에는 해송이 울창하다. 이 절벽의 한 부분에 조선 중기의 대학자이며 정치가였던 우암 송시열이 자기의 심정을 토로한 시를 새겨 놓은 바위. 조선 숙종(1689녀냬 때 왕세자 책봉문제로 당파간에 논쟁이 심화되어, 제주도로 유배를 가던 도중 잠깐 정박했었다.
동천석실 동천석실은 낙서재 맞은편 앞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동백나무 등 상록활엽수가 숲터널을 이룬 길을 따라 천연의 바위계단을 10여 분 오르면 커다란 바위 위에 동천석실이 자리잡고 있다.
동천석실이란 이름은 신선이 사는 곳을 '동천복지' 라고 하는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석실은 정사각형의 한 칸 짜리 정자이다. 집터는 좁고 주위를 바위가 빙 둘러쳐 있다. 고산은 여기서 차를 즐기며 독서를 즐기곤 했다. 부용동 제일의 절승이라는 이곳에 서면 부용동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낙서재 고산이 살았던 집터. 낙서재 남쪽에 잠을 자는 우민당이란 집을 짓고 현판도 달았으며, 옆에는 연못을 파고 수련을 심었다. 낙서재 뒤편에 병풍처럼 소은병 바위가 있는데 사색에 잠겨 한시를 장작했다. 현재는 흔적만 남아 있고 귀암의 자리에 민묘 2기만 자리잡고 있다.
중리해수욕장 해송과 함께 조화를 갖춘 길이 약 1km의 천연백사장으로 300m 정도 들어가도 사람 키를 넘지 않아 어린이와 수영에 미숙한 사람들이 이용하기에 편리하다. 앞에 떠있는 섬들은 마치 한 폭의 그림과 같으며 해송 군락지에는 야영장이 깔끔하다.
예송리해수욕장 약 1km의 해변에 다양한 크기의 깻돌이 폭 50m의 넓이로 분포하고 있다. 파도에 곱게 깎이고 씻긴조약돌들이 아름답다. 해안선을 따라 많은 종류의 난대림수종이 분포하고 있다. 앞바다에 떠있는 예작도, 갈마섬, 당사도, 복생도, 소안도 등의 주변 섬들은 한 폭의 풍경화를 연상케 한다. 이곳의 일출은 완도팔경 중 하나로 유명하다.
보옥리 공룡알 해변 보죽산 밑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가면 아름다운 해변이 나오는데 이곳에는 뽀래기 공룡알이라고 불리는 검은 바위가 깔려있다. 다양한 색깔과 크기의 조약돌들은 하나같이 둥글고 매끄럽게 닳아 있어 그 모양이 아름답다.
................................ 산악 월간지 발췌 ..........................
출처 : 산벗모임글쓴이 : 천둥 원글보기메모 :'섬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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