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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랩] 상원사(上院寺)
    불교 2015. 8. 4. 14:54

                                    상원사(上院寺)

     

    소재 :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산1번지

     

    상원사는 월정사와 더불어 자장율사가 세운 절로 조선시대에 태조와 세조가 행행하여 여러 전설을 남긴 곳이며, 일제말의 대선사 방한암스님이 주석한 곳이기도 합니다. 월정사에서 주봉인 비로봉을 향해 약10km 정도 올라간 곳에 있으며 적멸보궁을 참배하러 가는 탐방객들의 경유지입니다. 경내에 상원사동종(국보36호), 문수동자좌상(국보221호) 등 국보 2점과 상원사 중창권선문을 비롯 보물 2점이 있으며, 우리나라 문수신앙의 중심지입니다

     

    1. 상원사의 창건

    705년(성덕왕4)에 창건하여 진여원이라 하였다. 이 진여원은 보천이라 하였다. 이 진여원은 보천과 효명의 두 왕자가 창건하였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오대산에 들어간 두 왕자 가운데 형인 보천은 중대 남쪽 진여원터 아래에 푸른 연꽃이 핀 것으로 보고 그곳에 암자를 짓고 살았으며, 아우 효명은 북대 남쪽 산 끝에 푸른 연꽃이 핀 것을 보고 암자를 짓고 살았다. 이 두형제는 예배하고 염불하면서 수행하고 오대에 나아가 항상 공경스레 예배를 드렸으며, 날마다 이른 아침에 골짜기의 물을 길어다 차를 달여 1만 진신의 문수보살에게 공양하였다. 마침 신라의 왕이 죽자 나라사람들이 오대산으로 와서 두 왕자를 모시고 서라벌로 돌아가려 하였으나 보천은 울면서 돌아가려 하지 않으므로 효명을 모시고 서울에 돌아와서 왕위에 추대하였다. 그 뒤 20여년이 지난 705년 3월 8일에 진여원을 처음으로 세웠다. 그 뒤 보천은 오대산을 나라를 돕는 신행결사도량으로 만들 것을 유언하였고, 그 유언에 따라 진여원에 문수보살상을 모시고 낮에는 ,반야경>과 <화엄경>을 독송하게 하였으며 밤에는 문수예참을 행하게 하였다. 또 결사의 이름은 화엄사라고 하였고 복전7원을 두게 하였으며, 그 경비는 가까운 주현에서 주었다고 한다.

     

    2. 고려시대의 상원사

    고려시대에는 어떠한 역사를 거쳤는지 알 수가 없다. 다만 <동문선>의 <오대상원사 승당기>라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 고려말에 이 절은 극도로 황폐해 있었다. 그 때 나옹의 제자인 영령암은 오대산을 유람하다가 터만 남은 상원사를 보고 중창의 원을 세웠다. 판서 최백청과 그의 부인 김씨가 그 뜻을 듣고 재물을 희사하였으며, 1376년(우왕2) 공사에 착수하여 이듬해 가을 낙성을 보았다. 그 해 겨울 선객 33명을 모아 10년 좌선을 시작하였는데, 5년째인 1381년에 5주년 기념법회를 열자, 승당의 불상이 방관을 하고 향내음을 풍겼다. 중창주 김씨부인은 이 사실을 목도하고 더욱 불교를 믿는 마음이 지극해졌고, 토지와 노비를 시주하여 상원사가 영원히 존속될 수 있도록 하였다.

     

    3. 조선시대의 상원사

    조선시대에는 척불정책 속에 전국의 사찰이 황폐되었지만, 오히려 이 절은 더욱 발전하였다. 대표적인 척불정책의 왕이었던 태종은 1401년(태종1) 봄에 상원사의 사자암을 중건할 것을 권근에게 명하여 불상을 봉안하고 스님들의 거처로 사용할 3칸 집과 목욕소를 만들었다. 그 해 겨울 11월에 태종은 사자암에 왕림하여 성대한 법요식과 낙성식을 베풀었다. 이때 태종은 권근에게 명하여 "먼저 떠난 이의 명복을 빌고, 후세에까지 그 이로움이 미치게 하여 남과 내가 고르게 불은에 젖고 유명이 함께 의지하기 위함이니, 경은 기문하여 구원힌 세대에게까지 알게 하라."고 하였다.

    또한 이 절은 세조가 문수동자를 만나 괴질을 치료받고 고양이에 의해 자객의 습격을 피하는 등의 일화가 서려 있는 세조의 원찰이기도 하다.
    이러한 깊은 인연 속에서 세조는 신미와 학열의 권유로 상원사를 중창하게 된다. 1465년(세조11) 학열이 공사의 총감독을 맡았고, 인수대비는 경상감사에 명하여 쌀5백석을 내어 강릉부로 운반하게 하고, 비단 천필을 함께 내어 공사비에 충당하게 하였다.1466년 상원사의 낙성식을 가졌는데, 크게 동서로 나눈 가람형식에 각각 상실을 지었다. 남쪽에는 다섯칸의 누각을 짓고 범종을 안치하였으며, 동쪽에는 나한전, 서쪽에는 청련당을 지었다. 청련당의 서편으로는 재주실을 지어 승당과 선원으로 삼았다. 석조와 집기 등 현존하는 거의 모든 유물들은 이때에 마련된 것이다.(글 : 달마넷)

     

     상원사의 푯돌 - 적멸보궁과 문수성지라 적혀있다.

     

     관대걸이 - 세조가 목욕할 때 의관을 걸어둔 곳

     

    상원사 올라가는 계단. 할머니가 손녀 손을 잡고 올라가고 있다.

     

     누각 1층(입구)의 천장

     누하주의 역할을 하고있는 장초석.

     승방측면에 이어서 누각형식으로 되어 있는 종루. 종루 아래는 입구. 

     누각2층에는  범종이 설치되어 있다.

     

     동정각(動靜閣) - 정면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

     측면

     동정각의 편액.  동정(動靜)이란 움직임 가운데 고요함이 있다는 의미.

     판장문의 빗장과 빗장둔태. 종을 보호하기 위해 타종금지.

     

     

     신방목

     동종이 걸려있는 천장가구.

     국보 36호의 동종. 주악비천상. 높이 167cm.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종으로 음향이 낭랑하기가 비할 데 없답니다.  

    꼭대기에 조각된 용두(龍頭)

     

     문수전. 이익공 팔작지붕.

     

     

     

     

     

    측면.

     측면의 쪽마루 

     

     후면.

     문수전 앞에 있는 고양이 석상. - 자객으로 부터 세조의 목숨을 구해줬다는 고양이 설화.

     영산전.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집으로, 1946년 화재가 났을 때 유일하게 불길을 모면한 덕분에

     오대산 안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

     

     꽃살문

     영산전의 측면

     

    영산전 앞에 있는 탑.

    이 석탑은 본래 지금의 자리에 있던 것이 아니라 계곡에 있던 폐탑을 옮겨 놓은 것이라고도 하고 영산전 옆에서 출토됐다고도 전한다. 단층 기단 위에 세운 5층석탑으로 추정되나 화강암석재가 많이 없어져 자세히 알 수 없다.
    1개의 판석으로 이루어진 하대석은 20엽(葉)의 복련이 조각되어 있고 갑석에도 복련이 조각되어 있다.
    탑신부는 삼존불을 비롯한 불보살을 가득 새겨 매우 호화로우며 옥개석은 1층만 남아 있는데 거의 파손되었고 층급은 나타내지 않았다.
    조성시기는 확실치 않으나 학계에서는 고려 후기 또는 조선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청량선원. 정면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을 한 'ㄱ'자 형 전각으로 스님들이 수행하는 공간.

    국보221호의 문수동자상이 보관되어 있다.

     청량선원의 편액.

     

     

    청량선원의 담장.

     

    종무소

    요사체.

     일원각. 식수대 .원래는 상원사 동종이 설치되었다고 한다.

     

     

     

     

     

     

     벌나무차를 한잔마시고 적멸보궁으로.

     

    출처 : 나무과자
    글쓴이 : 순돌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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