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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금강경 강좌 제25강- 총정리(終)불교/금강경 2014. 11. 5. 16:46
金剛般若波羅蜜經
제25강 금강경 정리
반갑습니다. 금강경의 이해 제 25강이 되겠습니다. 본문이 지난 시간까지 다 끝났고 25강은 총정리를 잠깐 해드릴까 합니다. 총정리는 그동안 공부한 여러 가지 내용들을 몇 가지 상기해보고 다시 되짚어 보면서 좀더 중요하게 생각할 것은 다시 재차 설명해 드리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경의 이름 :날카롭고 빛나고 견고한 지혜로써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부처님의 말씀
먼저 금강경은 구체적인 이름이 <금강반야바라밀경>입니다.
금강반야, 다이아몬드와 같은 지혜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다이아몬드와 같은 그 지혜로써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바라밀, 구체적으로 하면 바라밀다, 도피안 쉽게 표현하면 ‘모든 문제를 해결하다’ 라고 하는 뜻입니다.
그래서 금강반야바라밀경이란 ‘다이아몬드와 같은 지혜로써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가르침’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부처님의 말씀’ 이런 뜻이지요.
다이아몬드는 물론 값집니다. 값진 말씀이라고도 할 수가 있어요. 값진 지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만 그것이 아니고 ‘빛난다’는 뜻입니다. 또 날카롭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견고하다는 뜻입니다.
‘날카롭고 빛나고 견고한 지혜로써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부처님의 말씀’ 이렇게 경전의 뜻을 해석해 보았습니다.
상병(相病)의 특효약
경전 제목만 보더라도 금강경은 우리 인간의 많은 문제들을 잘 해결하는 열쇠가 되는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문제들 중에서 무엇이 가장 큰 문제일까.
물론 여러 가지를 짚을 수가 있습니다만 금강경의 안목으로는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덕지덕지 붙어서 하나의 형상으로 형성되어버린 나에 대한 고집,아집 또는 어떤 병[我相], 또 대상으로서 남이라고 하는 것에서부터 오는 온갖 고집들, 차별, 차별심[人相], 또 중생이라고 어떻게 들으면 상당히 겸손한 용어 같기도 하지만 아닙니다. 겸손할 때는 겸손해야 되지만, 중생이 중생이 아니라 사실은 그 궁극적 입장에서는 부처님이나 하나도 다를 바 없다고 하는 의식을 가져야 하는데, 그저 끝없이 죄 많은 중생, 부족한 인간, 이렇게만 치부해 버린다면 그 또한 큰 병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생상(衆生相)이라는 것이지요.
그 다음 한계의식 수자상(壽者相)이라고 하는 것인데 누구나 다 알게 모르게 수자상이 있습니다. 자기 한계의식이 있어요.
어린 사람은 어린사람 대로 ‘나는 어리니까’ 하는 의식을 갖게 되고, 나이든 사람은 ‘나는 이 나이를 먹어서’‘이 나이에’ 하는 그런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사실 깨달은 사람의 안목에서 보면 아주 큰 병입니다.
부처님의 입장, 불교의 안목에서 볼 때 결코 나이를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사실은 흔히 사회에서 말하듯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하는 것이 맞는 말이예요. 불교적인 관점입니다.
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또 얼마나 많습니까. 사실 그래요.
그래서 나이가 많다고 나이 많은 행세를 하는 것도 병이고, 또 나이가 많다고 해서 공부하는 문제라든지 어떤 일을 하는 문제라든지 자기가 하고 싶은 자기발전을 위한 문제라든지 이런 것에 대해서 포기 의식을 갖는다든지 아니면 자포자기해서 ‘아이고 나는 이제 이런 정도의 나이에 이르렀으니까 더 이상 희망이 없다’ 라고 한다든지 하는 것은 불교인의 관점에서 볼 때 잘못된 일이고 큰 병입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인간의 실상을 정말 제대로 꿰뚫어 본 안목에서 보면 절대 인간은 그렇게 유한한 존재가 아니고 어떤 한계의식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상 중에서 제일 치료하기 좋고 고치기 좋은 것이 사실 수자상, 한계의식입니다. 그 중에서 내가 나이에 대한 의식이라고 이렇게 꼬집어서 말씀을 드리는데 제일 극복할 수 있는 것이 나이에 대한 의식이예요. 그거 하나만이라도 우리가 극복한다면 정말 불교를 만난 보람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본성자리, 본래인, 또 우리 궁극적 내 삶, 그 자리에는 결코 나이라고 하는 것이 문제되지 않는다고 하는 마음으로 무엇이든지 자기 발전을 위해서, 꿈이 있다면 바로 이 순간부터 실천에 옮기라는 뜻이지요.
금강경에서는 그런 것들을 상병(相病)이라고 해서 문제로 보고, 상병 하나만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깨뜨리고 지워버리고 쓸어버립니다.
금강경을 ‘병에 의해서 약을 투여한다[응병여약(應病與藥)]’라고 하는 입장에서 보면 바로 그러한 것이 되겠습니다.
금강경의 대지(大旨) : 파이집현삼공(破二執 顯三空)
금강경의 대지를 파이집현삼공 그렇게 합니다. 두 가지 집착은 나라고 하는 것에 대한 집착인 아집(我執)과 나 이외의 모든 것에 대한 집착인 법집(法執)입니다.
이 두 가지 집착을 깨뜨려 버리고 나도 공하고[아공(我空)] 나 이외의 모든 것도 공하고[법공(法空)] 그래서 그 둘이 함께 텅 비어 공하다[구공(俱空)]고 하는 이치를 나타내는 것인 파이집현삼공입니다.
구름만 없어지면[공(空)하면] 푸른 하늘과 빛나는 태양은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굳이 빛나는 태양 푸른 하늘을 이야기 하지 않아도 되지요.
그런 이치가 말하자면 금강경에서 상병을 깨고나면, 그다음에는 대자유의 삶이 펼쳐지고 날마다 좋고 행복한 삶이 펼쳐진다고 하는 이치입니다.
즉비(卽比)의 논리
그래서 여러 번 보아왔듯이 즉비의 논리로써 금강경은 일관됩니다.
금강경을 두고 이야기 한다면
‘금강경은 곧 금강경이 아니라 이 이름이 금강경이다’하는 것입니다.
금강경을 제대로 알면 굳이 금강경이라 할 것이 없어요. 그저 말을 하자니 금강경인 것이지요. 그것을 기점으로 해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불교든 부처님의 일이든, 중생의 일이든 그 무엇도 전부 이 즉비의 논리에 해당되지 아니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부처님도 곧 부처님이 아니라 이 이름이 부처님이다.
마찬가지로 중생도 중생이 아니라 이 이름이 중생이다.
보살도 보살이 아니라 이 이름이 보살이다.
부처님의 깨달음도 그 깨달음이 아니라 이 이름이 깨달음이다.
제일 병으로써 중요하게 다뤘던 사상(四相)인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도 그 이름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다. 결코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라고 하는 그 몹쓸 병통도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 때문에 잠깐 일어난 한조각 구름과 같은 것이죠.
구름은 상황 때문에 잠깐 생겼던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이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게 아니면 부정할 수 없지요. 실재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부처님이 부정합니까. 아무리 혜안이 뛰어났다 하더라도 있는 것을 없는 것이라고 부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없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있게 부정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거기에 너무 연연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래 없다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은 금강경에서 중요하게 여기지만 탐진치 삼독과 내지 팔만사천 번뇌 망상이 모두 그 것과 한 권속, 한 꾸러미, 같은 권속, 같은 꾸러미입니다. 그래서 사상을 부정할 수 있으면 나머지 여타 팔만 사천 번뇌도 다 우리가 부정할 수가 있습니다.
어둠이라고 하는 것은 없는 거예요. 어둠이 존재한다면 이 교실에 불을 켰을 때 그 어둠이 문을 통해서 나가는 시간이 있을 것 아닙니까. 그러면 문을 잠궈놨으면 어둠이 못나가야 될 것 아닙니까.
아무런 틈도 없습니다. 나갈 틈도 없지요. 나갈 시간도 없는 그 순간에 이미 환하게 불을 켜면 밝아지고 맙니다. 어둠이라는 게 있습니까. 있으면 그렇게 될 수가 없어요. 어둠이란 것은 없습니다. 그게 다 착각이고 환영인 것이지요.
그와 같은 이치가 우리들 존재의 실상인 것이고 또 알고 보면 이 세상의 실상이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그렇게 존재하는 거예요.
그걸 이제 우리는 말하자면 혜안이 부족하고 법안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론으로만 알고 자꾸 들으니까 그런가보다 라고 하는 정도에 그치지만 정말 조금만 더 한 눈을 뜨고 보면 틀림없이 그렇게 비칩니다. 그렇게 비치기 때문에 성인들은 특히 부처님은 과감하게 그런 가르침으로써 우리의 상병을 치료하는 거예요.
<상병은 본래 없는 병이다> 라고 하는 마음을 꼭 깊이 간직해야 될 줄 압니다. 그게 즉비, 금강경에서 여러 번 만날 수 있었던
반야바라밀이 즉비 반야밀이요 시명반야바라밀이다.
아주 재미있는 말이기도 하고 또 속시원한 말입니다.
나의 고통은 즉비 나의 고통이요, 시명 나의 고통이다.
곧 나의 고통이 아니고 이 이름이 나의 고통이다.
내 병은 곧 병이 아니요 이 이름이 병이다
내 공로는 내 공덕은 곧 내 공로와 내 공덕이 아니요 이 이름이 나의 공로고 나의 공덕이다. 그런 마음을 가졌을 때 그 사람이 얼마나 빛나겠습니까.
나의 짐도 내 아픔도 나에게 있는 문제도 이 논리로써 시원하게 해결할 수가 있고 또 나에게 좋은 점도 이 논리를 적용시켜서 쓸어버린다면 내 인격은 어느새 훌쩍 커져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이 금강경입니다.
그래서 금강경은 그 가르침이 그 내용이 어떤 의미에서 보면 아주 단순합니다.
단순하면서도 인간의 병을 치료하는데 정곡을 찌르는 무서운 비수와도 같은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고로 금강경을 아주 단순하고 소박하게 사는 선사들이 그렇게 좋아했던 것이지요. 선사들의 삶은 간략하고 소박하고 자연스럽고 탈속한 삶을 지향하고 있지요. 그런 삶을 사는 이들이 아주 좋아할 내용이 바로 이 금강경입니다.
우리나라는 대체적인 불교 역사가 선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금강경이 선사들의 손에 의해서 소의경전으로 정해지지 않았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소의경전으로서 금강경은 보살정신이 부족하다
금강경은 내 자신의 병을 치유하는데는 더 이상의 특효약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약입니다. 그것은 틀림이 없어요. 그러나 금강경은 단방약이예요. 복합적인 약이 아닙니다.
좀 더 시야를 넓혀서 불교 전반에서 볼 때는 금강경은 보살정신이 조금 부족합니다. 남의 아픔, 다른 사람의 어떤 고통을 덜어주는 데는 이 단방약 하나만 가지고서는 좀 부족하다, 그래서 지금 통불교적인 입장에서 볼 때 금강경은 소의경전으로서는 좀 부족한 면이 없지 않다라고 이런 지적을 감히 합니다. 그것도 참고로 불교전반을 생각했을 때 충분히 일리있는 말이 아닐까 이렇게 이해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나뭇짐을 내려놓고 다이아몬드를 짊어지고 가자
아무튼 우리가 포교원에서 금강경 강의를 이렇게 개설을 해서 그 강의를 끝내게 되었습니다.
육조 혜능스님이 금강경에 의해서 한 짐의 나무를 팔러 왔다가 다이아몬드 한 짐을 짊어지고 돌아갈 수 있었던 역사가 있습니다. 그 한 짐의 나무 값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옛날에 나무를 연료로 땔 때나 나무장사가 있었지 지금은 나무 장사도 없지요.
우리도 그렇게 하찮은 나뭇짐을 버리고 다이아몬드를 지고가겠다는 결심으로 금강경을 열심히 읽고 많이 쓰고 또 제대로 설명을 못하더라도 내 깜냥대로 설명하더라도 위인연설(爲人演說)을 자꾸 해 버릇 해야 합니다. 포교 전법이 절대로 부족한 한국불교에서 우선은 말로써만이라도 금강경을 소개하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상병을 고치는 뛰어난 이 처방전으로써 한 짐의 나무를 내려놓고 다이아몬드를 지고 가는, 보람되고 의미있고 값진 삶이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것으로써 금강경 강의 모두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카메라맨 :네 좋습니다.
청중 : 박수
큰스님 : 카메라맨하고 나하고 둘이서 찍으려고 했는데 뜻하지 않게 우리 염화실 가족들, 불광사 가족들, 그 외 또 이런 저런 소문듣고 오신 불자님들 이렇게 많이 성원해 주셔서 제가 강의하는데 힘이 훨씬 덜 들었습니다. 둘이서 했다면, 카메라만 보고 했다면 상당히 힘들었을 것이고 또 좋은 생각이 안나왔을 텐데, 뜻밖에 우리 불자님들이 많이 오셔서 정말 강의 중에 그래도 괜찮은 이야기들이 종종 나오게도 되고 했습니다. 그건 모두가 여러분들의 공덕입니다. 고맙습니다. 다음에 또 좋은 인연되길 바랍니다.
박수소리
금강반야바라밀경 끝
출처 : 염화실글쓴이 : 慧明華 원글보기메모 :'불교 > 금강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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