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승지 산행, 서울 동그라미 잇기 250㎞ 산행, 호남알프스 산행, 어천~인월 지리산 태극종주 무박 산행, 진주 진양호~인월 120㎞ 무박종주. 재미있는 테마산행을 만들며 전국을 누비는 자칭 ‘요물’이라는 여성 산꾼이 있다. 지리산 태극종주나 호남알프스 산행 등은 아는 사람은 알지만 십승지 산행이나 서울 동그라미 잇기 산행은 아마 대부분 생소할 것이다. 그녀가 바로 역사책에나 나올 법한 십승지를 등산 코스로 만든 사람이다.
참 기발하기도 하다. 서울 동그라미 잇기 산행도 그렇다. 누가 서울을 산으로 둘러칠 수 있다고 생각이나 해봤겠나. 그것도 해보니 모두 33개란다. 환종주하고 나서는 약사산은 아무래도 포함시키면 안 될 것 같다며, 32산으로 해야겠단다. 모두 250㎞에 달한다. 물론 6개 구간으로 나눠서 했지만 재미있는 산행을 즐기는 아줌마다.
-
- ▲ 수리산 태을봉을 거쳐 슬기봉 방향 암릉지대를 조심스럽게 지나고 있는 황영옥씨와 일행.
-
‘요물’이란 별명을 가진 황영옥(51)씨는 실은 중환자다. 그것도 걷기가 치명적일 수도 있는 척추협착증 환자다. 요즘도 일주일에 두세 번씩 병원에 가서 허리 물리치료를 받는다.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산행이 가능할까?
“의사도 거짓말 한다고 그래요. 어떻게 허리 아픈 사람이 그렇게 등산을 심하게 하느냐고 말이에요. 그런데도 계속 등산을 하니까 요즘은 심하게 하지 말고 살살 하라는 말로 바뀌었어요. 산에 가면 허리 아픈 줄 별로 못 느낍니다. 이곳저곳 경치 즐기며 가다 보면 어느덧 목적지에 다 와 있어요.”
이 정도면 등산중독이다. 하지만 중독 중에서 가장 좋은 중독이다. 다른 중독은 삶에 상처를 주고 생채기를 남기지만 등산중독은 삶에 활력을 주고 생활의 원동력이 된다.
그녀가 등산중독에 빠진 것은 아마 앉아서 일을 오래한 탓인 것 같단다. 학교를 졸업하고 1980년대 초부터 직장생활을 했다. 그때부터 산행도 시작됐다. 지금과 같은 본격적인 산행이 아니고 당시에는 여행 수준이었다. 등산으로 치자면 슬슬 걷는 정도였다. 일은 열심히 했다. 평소에 성실히 일을 하면서 더 많은 일이 생기면 ‘빡세게’ 했다. 한번 잡으면 완전히 끝을 봐야 했다. 그런 직장 생활을 20년 가까이 했다.
-
- ▲ 황영옥씨가 수리산에 오르면서 잠시 포즈를 취했다.
-
1999년 어느 날 몇 시간 일을 하고 일어나려는 순간 갑자기 허리가 삐끗하더니 일어설 수조차 없었다. 통증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에 입원했다. 척추협착증이라는 병명이 나왔다. 디스크와 척추 신경 사이의 공간이 좁아져 신경을 압박하는 병이었다. 더욱이 척추가 고정되지 않아 신경을 쉽게 건드렸다. 그럴 때마다 고통이 더했다.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하더라도 완치가 안 되고 움직이는 척추에 못을 박아 고정시킬 뿐이라고 했다. 척추에 쇠못 두 개를 박았다. 다행히 수술 경과는 좋았다.
아스팔트에선 30분만 걸어도 통증 시달려
한 달 휴직한 직장엔 휴직 연장을 했으나 별로 다니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만두기로 했고, 혼자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이젠 돈 벌 능력도 없으니 퇴원하면 무슨 일을 하나.’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 무료함을 느끼면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 따라 강남 간 게 아니라 산으로 발길을 옮겼다. 조금씩 다니다 그녀의 성격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번 일을 하면 끝장을 보고 푹 빠지는 성격이다. 산에 그냥 가기보다 ‘내 기록이니 노트에 정리해보자’는 마음이 생겼다. 북한산을 11시간 종주한 기록을 인터넷에 올렸다. 네티즌들은 굉장히 좋은 반응을 보였다. 재미가 붙었다. 살살 시작한 산행이 서서히 강도가 더해갔다. 어천에서 인월까지 80㎞ 지리산 태극종주를 했다. 무박으로 48시간 걸렸다. 너무나 재미있고 실감나게 썼다. 읽어본 사람 모두 인터넷에 올리라고 했다. 조금 더 다듬어 올렸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하루에 조회건수가 4,000여 건에 달했다. 댓글만 32개가 달렸다. 인터넷에서 단숨에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한 번 각인된 화제의 인물은 계속 화제를 낳아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그러나 ‘요물’인 그녀는 부담 없이 하는 산행 그 자체가 화제였다. 그녀의 성격 탓이기도 했다.
-
인월에서 진양호까지 120㎞를 그녀가 가입한 산악회의 김덕주 회장과 둘이서 종주했다. 김덕주씨는 남강~인월 간 200㎞ 이상의 거리를 처음으로 왕복종주한 경험이 있었다. 딸이 사법시험 공부할 때 아빠도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아빠는 첫 왕복종주를 했고, 딸도 나중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고 한다.
지리산 종주를 수차례 마친 그녀는 가야산 천지 종주에 나섰다. 시집이 거창이다. 시어머니께 산에 간다는 사실을 전화로 알렸다. 시어머니의 며느리 사랑은 산행 중에 아름답게 나타났다. 며느리가 거창 인근 어느 지점을 지나가는 사실을 알고 나무에 먹을 보따리를 걸어놓고 지나가는 길에 가져가라고 했단다. 사람은 없고 보따리만 댕그라니 걸려 있었다. 참 감동적인 장면이다. 그 어머니에 그 며느리다.
2005년에는 혼자 백두대간 종주를 감행했다. 아들이 입대할 즈음이었다. 이때다 싶었다. 엄청나게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새벽 속초에서 택시를 타고 미시령으로 가자고 했다. 택시기사가 날씨가 너무 안 좋아 못 간다고 했다. “걱정하지 마라. 갈 수 있는 곳까지 갈 것이다”라고 하자, 택시기사는 “그럼 여기서 1시간 동안 기다리고 있을 테니 못 가면 내려오시라”고 했다.
-
- ▲ 황씨와 일행이 관모봉 정상에 올라 주변을 조망하고 있다.
-
산행하며 역사 배우는 재미 쏠쏠
그녀가 누군가. 한번 한다면 하는 ‘요물’이다. 그대로 올랐다. 비가 너무 쏟아져 몸에 지니고 있는 모든 게 다 젖었다. 휴대전화도 물에 젖어 불통이 됐다. 헤드랜턴은 켰으나 길만 보일 뿐이었다. 15시간 이상 걸려 희운각대피소에 도착했다. 직원들이 모두 놀랐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날씨에 왔느냐”고 했다. 따뜻한 밥을 해주며 숙소에서 재워주기까지 했다. 집에서는 이틀 동안 연락이 두절되자 비상이 걸렸다. 실종 신고 직전에 그녀가 연락해 무마됐다.
설악산에선 비와 눈, 겪을 건 다 겪었다. 고비도 숱하게 넘겼다. 지리산에서도 여러 상황을 경험했다. 스키장갑을 껴도 손이 얼 정도의 날씨는 예사였다. 모든 악조건은 두루 겪었다.
좀 더 재미있는 산행을 할 수 없을까 고민했다. 지도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서울 둘레 산 잇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온 게 서울 33산 동그라미 그리기였다. 2007년에 6구간으로 끊어 끝냈다. 행주대교 북쪽에서 시작해 강은 팔당대교를 한 번만 건넜다. 총 거리 250㎞였으니 한 번에 평균 40㎞ 남짓이었다. 지도를 펼쳐놓고 물줄기를 확인해가며 등산로를 그려갔다. 참으로 희한한 환자였다. 주변의 만류도 심했다. 그녀 스스로도 “이젠 그만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잠시 휴식기를 가졌다. 물리치료는 병원에서 계속 했다. 아스팔트 길은 30분만 걸어도 허리 통증 때문에 걷지 못한다. 산에만 가면 통증이 거짓말같이 씻은 듯 사라졌다. 그러니 산에 안 갈 수가 없다.
-
- ▲ 가야산을 종주할 때 시어머니가 나무에 달아 놓으신 도시락과 간식.
-
어느 날 산행기를 쓰기 위해 참고로 책을 보다 십승지가 눈에 들어왔다. ‘맞다. 10승지 테마산행을 해보자’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못 말리는 요물이다. 그게 지난해 2008년이다. 지도를 그려갔다. 소백산부터 시작했다. ‘테마가 너무 좋다’는 반응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태극종주를 처음 할 때의 신선한 느낌을 그대로 받았다.
그녀는 지리, 역사를 전공한 것도 아니지만 직접 산행하면서 너무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정감록에 나오는 십승지는 천지 대개벽이 일어날 때 재앙을 피하기 좋은 열 군데를 말한다. 영주·풍기 금계촌 일대, 봉화·춘양 일대, 보은·속리 일대, 공주·유구·마곡 두 강 사이, 단양 의풍리 일대, 예천 금당동 일대, 합천 가야산 일대, 덕유산 무풍면 일대, 부안 변산면 일대, 남원 운봉읍 일대 등이다. 대개 태백산·소백산·덕유산·가야산·지리산 등 명산에 자리 잡고 있으며, 외부와의 교류가 차단된 곳이다.
십승지 산행은 아직 끝나지 않고 있다. 각각의 산행지마다 나름대로의 이름도 가지고 있다. 소의 뱃속 모양과 닮았다 해서 ‘우복동천’이란 이름이 붙은 산길도 있고, 세 개의 산에 세 갈래 물길이 있다고 해서 ‘삼산삼수’도 있다. 역사 공부를 하면서 하는 산행이다.
“제 목적은 산줄기를 이어가는 거예요. 널리 알려서 사람들이 많이 다니면 기분도 좋아요. 이런 테마산행은 사람들에게 우리 역사를 더 알리는 계기도 제공하잖아요. 산에 다니면서 역사도 배우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녀의 산행은 몸을 가누지 못할 때까지 계속 될 것 같았다.
/ 글 박정원 차장 jungwon@chosun.com
사진 이경호 기자 ho@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