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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랩] 백두대간 3구간 여원재 - 복성이재
    백두대간(완주) 2011. 7. 11. 22:40

     

     

     

     

     

     

     

     

    ( 삿갓 한문규님의 산행기 원문에 사진 추가)

    - 일본을 혼내줄 비책을 찾아 -



    산행일자 : 2005.5.8.

     

    상행인원 : 방수재. 나(한문규). 김동혁. 그리고 크로바 산악회

     

    산행날씨 : 흐린후 맑음

     

    산행거리 : 도상거리 - 17.5㎞ , 실측거리 - 21.48㎞ <셀파산장자료>

               여원재 - 5.47㎞ - 고남산 - 5.0㎞ - 매요리 - 3.3㎞ - 사치재 - 2.93㎞

               - 새맥이재 - 1.40㎞ - 시리봉 - 3.38㎞ - 복성이재



    여원재       (고도 470m)   -  3:10

    고남산       (고도 846.5m)  -  5:15

    통안재       (고도 547m)    -  5:50

    매요리휴게소 (고도 470m)    -  6:55~7:35  *아침식사

    사치재전망대 (고도 550m)    -  5:50

    697봉        (고도 697m)    -  9:15~9:25

    새맥이재     (고도 515m)    -  9:54

    시리봉       (고도 777m)    - 10:25

    781봉        (고도 781m)    - 11:00~11:40

    복성이재     (고도 550m)    - 12:40

     




    대간길이 무엇이길래 어버이날을 하루앞둔 시기에 모처럼 모여있는 가족들과의

    만남을짧고 어색하게 치루고 베낭을 꾸리는 마음이 착잡하고 못내 서운하지만

    마음을 다잡아 질끈 베낭을 맨채 두아들의 포옹을 받고 사모님이 운전하는

    차량으로 중간 정류장인 죽전으로 향한다. 산에가는데 불평없이 차로 모셔다

    주시는 나의 사모님에게 감사할뿐이다.

    죽전에서 승차하여 잠깐졸고있는 사이 여원재에 도착한다.



    여원재, 백두대간 가운데 가장낮은 고개중의 한곳이며 영남과 호남, 남원과 운봉을 연결하는 고개로 예로부터 동서문화가 교류하던곳이면서 한도 많은 고개이다.

    고려말 운봉현까지 침입한 왜구가 고개마루 주막집 주모에게 손찌검을 했다하여


    시퍼런날로 왜구의 손을 탄 왼쪽가슴을 잘라내고 자결한후 왜구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운봉에 당도한 이성계의 꿈자리에 백발이 성성한 노파로 나타나 이길수 있는 날짜와 전략을 계시하여 적장 아지발도를 활로 쏘아 죽이고 대승하게한다.

    이성계는 꿈에 나타난 노파가 주모의 원신이라 믿고 고개마루 암벽에 여상을

    암각한다음 주모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사당을 지어 여원이라 불렀다고 한다.



    또한 갑오농민전쟁때 김개남이 지휘하는 동민농학군 1만명이 외눈박이 박문달이

    지휘하는 관군의 습격을 받아 농민군이 패퇴한곳이기도 하다.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놈들을 혼내줄 비책을 대한민국 전체국민(친일매국노는제외-일본에 비책을 가르켜줄수있음)의 꿈에 할머니(주모)가 나타나 가르켜 줄 것을 빌며 산행길로 접어든다.


     

     


    대간길을 걸으면서 하나의 아쉬움이 있다. 헤드렌턴의 불빛에 의존하여 컴컴한

    길을 걷노라니 주변경관과 사물에 대한 감회도 없다.  선두가 몇번을 알바를

    행하고 나서 정상적인 대간길을 찾아내니 산행에 속도를 붙는다. 바닥에 솔잎이

    쌓여 마치 카펫같은 길이 이어져 발걸음이 무척 상쾌하다.


     

     

     

     


    고남산 직전 암릉에 도착하여 선답자들이 매어놓은 자일을 잡고 트레바스한다.

    도봉산 선인봉 남측등반하던생각에 옛시절이 그리워진다. 눈이라도 내리면 상당히 위험한 길이 될 것 같다. 암봉을 통과하면서  서서히 날이 밝아오면서 조망이

    트이기 시작하여 랜턴을 끄고 진행한다.


     

     


    고남산 . 이성계가 제단을 쌓고 서쪽기슭에 있는 창덕암 약수터에서 목욕재개하고 꿈의 계시를 받아 적장 아지발도를 황산에서 사살하고 대승한다. 조선건국후

    이산을 태조는 태조봉, 또는 제왕봉이라 불리웠던 산이다. 고남산의 남동쪽

    물줄기는 광천을 통하여 낙동강 북서쪽의 물줄기는 요천을 통하여 섬진강에

    흡수되며 846m의 낮은 고도임에도 반야봉을 비롯하여 노고단에서 바래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의 능선과 남원시가가 눈으로 들어오는 조망이 월등한 산이다.



     


    고남산에서 일행이 한데모여 사진촬영한후 매요리로 향한다. 여기서 대간길에

    대한 설이 2가지인데 판단은 여러분들이 하여주시길 바랍니다.

    하나는 고남산을 내려서면서 임도를 가로질러 오른쪽으로 잠시올라가다 통신탑을 등지고 나무끝에 빽빽히 매달린 표시기들을 보며 다시한번 고샅을 파고들고

    다시 임도가 나타나면 왼쪽으로 올라가다 또하나의 고샅을 파고드는 길이고

    두 번째는 임도를 따라 진행하다 왼쪽에 셀파산장에서 매단 표시기 달랑 하나 달려있는 오르막으로 오르는길 두가지인데 우리는 등반대장의 지시에 의하야 두번째의 길로 접어든다. 이곳 바닥 역시 비단길의 연속이다.


     

     

     


    통안재(독골재) , 유치재를 통과하여 매요리에 도달한다. 매요마을 말의허리를

    닮았다 하여 마요리였다가 사명대사가 마을사람들이 매화같이 순결하고 선량할

    것이다 해서 매요리라 불렀는데 매요리 휴게소에 도착하여 아침식사를 준비중에

    막걸리 두병을 시키니 묵은지를 내어다 주시고 상추를 씻어다 주시는

    매요리 휴게소 신순남 할머니의 인심에서 매요리 인심을 엿볼수 있다.


     

     


    할머니의 푸짐한 인심을 뒤로하고 사치재로 향한다. 포장도로의 대간 표시기를

    진행하다 유치삼거리를 지나 618봉의 오르막을 시작한다. 618봉의 오르면

    88고속도로를 진행하는 차량이 보이고 우측으로 지리산 휴게소가 보인다,

    급한 내리막을 지나 88고속도로에 도착하여 고속도로를 횡단하지 않고 우측으로

    진행하면 고속도로 밑의통로(야생동물 이동통로라 하나 기능이 미흡함)를 통과하여 오르막을 시작한다.


     

     


    사치재를 지나 697봉에 도착 뒤를 돌아다보니 저멀리 고남산 중계탑을 비롯하여

    우리가 지나온 크고작은 봉우리가 한시야에 들어온다. 697봉에 앉아 어버이날의

    의미를 되새기며 부모 은중경에 나오는 부처님 말씀을 생각해본다.



    “가령 어떤사람이 있어서

    왼쪽어깨에 아버지를 모시고, 오른쪽 어깨에 어머니를 모시고

    뼈가 달아져 골수에 미치도록 수미산을 백천년 돌더라도

    부모님의 은혜는 갚을수가 없느니라.


    가령어떤 사람이 있어서

    부모님을 위하여 몸을 심지삼아 불을 붙여서

    여래께 공양하기를 백천겁이 지나도록 하더라도

    부모님의 은혜는 갚을수가 없느니라.   - 부모 은중경 - ”


     

     

     

     

     

     


    새맥이재를 통과하고 시리봉을 선두쫓아 정신없이 지나친다. 781봉이 눈앞에

    들어올즈음 선두대장의 무전이 날아온다. 선두팀들의 산행이 지연되고 더 이상의 전진은 불가능하다는 무전이다. 이무슨 해괴한 말씀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수

    없을즈음 선두대장의 해설이 다시 무선을 타고 날아온다. 대장님이 여지껏 산행을 하였어도 이렇게 아름다운 철쭉은 본적이 없어 사진촬영하느라고 진행할수 없다는 말씀이다.


     

     

     

     

     

     

     


    781봉에 도착하여 후미팀(진짜산꾼-주변경치도 즐기고 나물뜯고 사진촬영하고)의 주막이 차려진다. 서로 가지고온 정상주(중년이 마시는 것은 술이아니고 인생을

    마시는 것이다)를 나누어 마시며 서로의 우정을 돈독히 한다.

     

     

     

     

     

     

     

     

     



    아름다운 철쭉꽃을 보기위해 781봉을 서둘러 출발하여 야막성터가 보이는 무명봉에 도착하니 우리의 키도 넘게 커버린 철쭉들이 저마다의 화사함을 자랑하고 있다.

    선두대장의 말씀대로 사진찍으랴 감상하랴 더 이상의 진행은 불가능하다.

    붉게 타버린 산을 보고 있자니 무슨말로도 표현할 수가 없는 마음이 참으로

    안타까울뿐이다.


     

     

     

     

     

     

     

     

     


    산행시간도 있고하여 언제 다시볼 수 없는 철쭉꽃의 장관을 뒤로하고 아막성터

    (백제와 신라의 격전지로 백제에서는 아막성터, 신라에서는 모산성이라 불리웠고

    현재 북문지와 수구가 있었던곳으로 보이는 1.5m의 정호지가 있다하나 확인하지

    못하였음)를 지나 작은복성이재를 통과하고 큰복성이재로 사뿐히 내려와 막걸리

    한잔을 총대장님에게 얻어 마시고 오늘의 산행을 마무리 한다.


     

     

     

     

     


    함께 산행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글을 한국의 산하에 먼저 올려 주신 삿갓 한 문규님 에게도 감사 드립니다)

    출처 : 김 동혁의 산행일지
    글쓴이 : 김동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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